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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4. 2020

<다크 워터스> 토드 헤인즈 2019

 미국의 거대 화학기업 듀폰은 오랜 시간 PFOA 또는 C8이라 불리는 독성 화학물질을 제품에 사용했고, 동시에 공장 인근 매립지와 강에 버렸다. 이 사실은 대기업의 변호를 담당하는 로펌 소속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의 폭로를 통해 밝혀진다. 토드 헤인즈의 신작 <다크 워터스>는 롭이 이 사건을 밝혀내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듀폰과의 싸움을 어떻게 이어 왔는지를 담아낸다. 때문에 이 영화는 <벨벳 골드마인>, <파 프롬 헤븐>, <캐롤> 등을 연출해온 토드 헤인즈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도리어 <디어 프레지던트 오바마>, <스포트라이트> 등 영화의 주연과 제작을 겸한 마크 러팔로의 최근 필모그래피와 이 영화는 더욱 친밀하다. 게다가 마크 러팔로는 <폭스캐처>를 통해 한번 듀폰 가(家)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크 러팔로는 MCU의 헐크로 잘 알려진 배우임과 동시에 할리우드의 유명한 액티비스트이다. 여성행진이나 퀴어 퍼레이드에 동참하고, 버니 샌더스와 제러미 코빈을 지지하며, 조지 W.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 범죄를 비판하기도 한 그의 꾸준한 관심사는 환경문제다. <다크 워터스>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듀폰과 듀폰의 독성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자 및 롭 빌럿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에서도 묘사된 것과 같이, 듀폰은 듀폰 및 피해자 양측과 관련 없는 연구그룹의 피해지역 주민 검사를 통한 문제 해결에 합의했으나, 결과가 나온 이후 이를 파기했다. 롭은 3500여 건의 개별 피해자 소송의 변호사를 맡았고, 그가 처음 세 건의 재판에서 승리한 뒤 듀폰은 나머지 사건에 대해 일괄적으로 배상했다. 하지만 듀폰을 비롯한 화학기업들이 내보낸 독성 화학물질은 사라지지 않으며, 여전히 PFOA가 사용된 제품들의 사람들 곁에 남아 있으며, 인류의 99%를 포함해 세계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PFOA에 일정 부분 중독되었다는 자막이 등장한다. 마크 러팔로는 환경과 관련한 최근의 이슈, 그것도 아주 광범위한 범위를 영화로 만들고 직접 연기하여 알린다.

 그렇다고 <다크 워터스>에 대해 토드 헤인즈를 배제할 수는 없다. 비록 <원더스트럭>이라는 실망스러운 전작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능수능란하게 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특히 롭이 듀폰에게 소송을 제기한 이후 그에게 처음 피해사실을 알린 월버 테넌트(빌 캠프), 혹은 테넌트 사건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지역 주민 전체와 듀폰 사이의 소송에서 지역민을 대표하는 조(메어 위닝햄)와 달린 카이거(리처드 하거맨) 부부, 그리고 롭과 그의 아내 사라(앤 해서웨이)가 겪는 주변인들 및 언론의 따가운 시선을 그리는 장면은 토드 헤인즈의 것이다. 토드 헤인즈는 수차례 사회적 정상성에서 벗어난 이들의 삶을 다룬 영화를 연출했다. <벨벳 골드마인>의 일탈적 글램 로커들, <파 프롬 헤븐>의 게이 남편 및 흑인 정원사와 사랑에 빠지는 중년의 중산층 여성, 그리고 <캐롤>의 두 주인공.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도덕의 일반원칙이라기 보단 그들이 살아가는 50년대, 60년대, 80년대의 미국 혹은 영국의 사회규범이다. 사회적 정상성은 옷이나 헤어스타일 등 외적인 것부터 섹슈얼리티나 정치적 태도와 같은 내적인 것까지 많은 부분을 획일화한다. 

 <다크 워터스>에서 적용되는 정상성은 듀폰의 회사에서 노동하는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파커스버그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듀폰의 사원증을 보여주자 바로 대출이 됐다”는 극 중 한 주민의 대사처럼, 듀폰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그것을 지속하게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윌버와 카이거 부부, 그리고 롭은 그 듀폰이 주민들을 독살하고 있었음을 폭로한다. 이들은 파커스버그의 정상성을 어기고 듀폰에 대항한다. 토드 헤인즈의 영화에서 정상성을 위배하는 사람들의 사랑 혹은 연대는 그들의 시선을 통해 묶인다. 동시에 정상성에 순응하는 혹은 그것을 수호하는 자들의 시선은 공격적으로 이들의 묶인 시선을 절단하려 한다. 실화에 기반한 <다크 워터스>는 시선의 묶임을 스스로 절단할 수밖에 없던 사람에게서 시작한다. 젖소를 키우던 윌버는 PFOA가 섞인 물을 마시고 병에 걸린 소를 죽인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들이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더 큰 고통을 받기 전에 죽이는 것뿐이다. 롭이 듀폰에서 제공받은 환경관리국의 보고서를 들고 윌버를 찾아가는 시퀀스에서 병든 젖소 한 마리가 윌버를 향해 돌진한다. 윌버는 가족처럼 아끼던 젖소에게 총을 겨누고, 결국 쏜다. 그 과정은 윌버와 흐릿해진 젖소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윌버는 젖소와 자신이 나누던 시선이 흐릿해졌음을 직감한다. 영화 말미에 가서야 롭은 “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았다”라고 말한다. 윌버는 그 시선을 스스로 절단해야 했음을, 그리고 그 절단을 유도하는 것이 듀폰이라는 사실을 안다. 1998년 그가 시작한 사건은 2015년이 되어서야 일단락된다. 그 시작엔, 롭의 시선에 닿은 윌버의 얼굴이 있다.

 토드 헤인즈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건을 쌓아간다. 1998년부터 2015년까지, 각 해에 벌어진 일을 담아내고 단호하게 그다음 해로 넘어가는 편집은 관객에게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시선의 묶임으로 시작된 롭의 행동이 시선의 단절을 유도하는 듀폰과 정상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들로 통해 끝없이 방해받고 그 압박 속에서 제대로 숨 쉬지 못한다. 영화에 비일비재하게 드러나는 디졸브는 그것들의 겹침을 보여준다. 듀폰이 보낸 거대한 서류더미의 압박, 식당과 길거리에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들. 하지만 그 겹침 사이에서 명징해지는 것은 롭의 영웅적 행위보단 독성 화학물질의 영향 아래의 있는 사람들이다. 파커즈버그에 도착한 롭의 시야에 들어오는 자전거 타는 소녀들, 비록 그들을 노려보고 있지만 같은 듀폰의 피해자인 사람들, 롭의 자동차가 지나간 뒤 잠시 프레임 전체를 차지하는 듀폰 건물의 경비원 등. 단호하게 한 해 한 해 올라가는 영화 속 연도는 점점 관객에게 가까워지고, 영화가 정리하여 제시하는 위협 또한 다가온다. 아니, 이미 실재하던 위협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듀폰에서 일하던 임산부와 여성, 돈 없는 농부와 그의 가족과 같은 약자가 먼저 피해자가 된 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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