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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5. 2020

<신문기자> 후지이 미치히토 2019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에서 일하는 공무원 스기하라(마츠자카 토리)는 총리를 비롯한 고위 내각 관료들을 위해 SNS 조작 등의 일을 주문하는 조직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토도신문의 기자 요시오카(심은경)는 총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이 든 기자의 성폭행 행위가 묻히고 피해자의 신상이 밝혀지는 상황에 의구심을 가진다. 때마침 내각이 대학 설립과 관련한 음모를 지녔음을 폭로하는 자료가 토도신문에 도착한다. 이런저런 사건들이 얽히며 폭로 자료를 쫓는 요시오카와 자신의 업무에 의구심을 갖는 스기하라는 이 폭로 자료를 통해 얽히게 된다. 영화 <신문기자>는 아베 정권의 가케 학원과 연관된 비리를 폭로한 도쿄신문의 기자 모치즈키 이소코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모치즈키 이소코는 일본 최초의 미투 폭로 사건이었던 이토 시오리의 폭로를 장기간 취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때문에 영화가 일본 내 미투 폭로에서 시작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스기하라가 업무에 회의감을 갖고 의구심을 품는 것도 미투 사건을 묻기 위한 SNS 조작과 가짜 뉴스 배포 업무를 접하고 난 이후이다. 일본 정부는 스스로 혹은 측근이 저지른 비리와 범죄를 묻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압박하고, 언론은 그 압박을 순순히 따르며 정권 유지에 힘을 실어주는 기사를 내보낸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가속화되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은 2차 대전의 원흉이었던 일본 군국주의로의 회귀와 마찬가지이다. <신문기자>는 그곳으로 회귀하려는 정권이 모든 것을 통제 하에 두려 발악하는 모습을 잡아낸다. 그리고 일본 (아베) 정권의 발악은 단순히 총리 개인이나 특정 정당의 것으로 머물지 않는다. 정권이 만들어낸 압박은 소위 ‘국민성’이라 불리는 것으로 파고들어 그것에 대항하는 것을 저지한다. 요시오카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라는 점은, 그와 같은 경계적 인물이기에 되려 돌진할 수 있는 인물임을 드러낸다. 

 <신문기자>의 불확정적인 엔딩이 묘사하는 것이 그 풍경이다. 스기하라는 자신이 짊어진 짐을 안정적인 직장 및 가족의 안전과 맞바꿀 수 있는가? 요시오카는 해당 사건에 대한 취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듯했던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멈추고, 상반된 표정의 두 사람은 일본 국회의사당 인근 횡단보도 양쪽 끝에서 마주친다. 영화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여주며 끝난다. 영화가 소재로 삼은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같은 직군의 실화를 다룬 영화 <더 포스트>나 <스포트라이트>처럼 승리나 희망, 연대의 결말을 성급하게 보여줄 수 없는 작품이다. <신문기자>가 다소 경직된 분위기로 진행되는 이유는 영화가 묘사하는 현실이 이미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는 그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가치를 지니게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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