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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3. 2020

77. <얼굴들, 장소들>

원제: Visages, Villages
감독: 아녜스 바르다, JR
제작연도: 2018

 바르다와 JR의 여정은 다양한 장소의 다양한 얼굴들을 스크린 위로 불러낸다. 버려진 탄광 마을에 남은 최후의 주민, 어느 염산 공장의 모든 직원들, 다른 곳과 달리 동물들을 존중하며 기르는 농장의 염소, 해변에 버려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벙커와 그 해변에서 바르다가 찍었던 동료의 얼굴, 항만 노동자의 아내들의 모습이 붙은 트레일러…… 노동, 연대, 사랑, 환경, 죽음, 여성, 역사, 동료, 영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누벨바그 시절부터 90세가 된 지금에 이르는 아녜스 바르다 본인의 이야기까지, <얼굴들, 장소들>은 그가 영화 인생 내내 다루어 온 주제들을 89분의 영화에 녹여낸 것만 같다. 거기에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할 수 있는 카메라의 존재감은 영화감독이자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한 바르다와 전업 사진작가인 JR이 협업하게 된 이유와도 같다. 영화는 바르다와 JR의 카메라를 통해 익명 혹은 무명의 얼굴들을 호명하고, 그것을 어떤 장소의 벽에 붙임으로써 이름들과 장소들이 품은 주제를 도출해낸다. 거대한 사진을 벽에 붙이는 행위는 마치 벽에 영화를 영사하는 것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다시 카메라로 촬영하여 극장의 스크린에 영사하는 것은 여러모로 압도적인 체험이 된다. 벽에 붙은 거대한 얼굴을 보는 얼굴의 주인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은 정말 아름답다

 <얼굴들, 장소들>은 아녜스 바르다가 자신의 영화 인생을 되돌아보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종종 누벨바그 시절의 작품들, 가령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1964)이나 본인의 작품인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2008) 등이 인용되기도 하고, 고다르와 자크 리베트, 안나 카리나 등과의 에피소드가 바르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기도 한다. 눈이 나빠져 눈에 주사를 맞는 자신의 모습을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 속 장면과 대치시키는 장면과 같은 씨네필적 유머 역시 영화 곳곳에 뿌려져 있다. 여기에 앙리 카트리나 브레송, 기 부르댕 등 바르다가 영화를 만들기 전 함께 사진을 찍었던 동료들과의 이야기 또한 등장한다. 바르다가 고다르를 만나러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 후반부의 이야기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누벨바그와 영화를 추억하는 바르다의 진심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때문에 <얼굴들, 장소들>은 카메라에 담긴 피사체와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관객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바르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제작될 수 있는 작품이다. 카메라라는 매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완벽한 선택지이다.

 아녜스 바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총망라하는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2019)를 2019년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한 지 한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미지 북>(2018)를 발표하고 최근에도 신작을 편집중인 장 뤽 고다르와 단편 <호수의 사람들>(2018)을 발표한 장-마리 스트라우브를 제외하면 이제 프렌치 누벨바그의 생존자는 없다. <얼굴들, 장소들>은 프렌치 누벨바그가 (드디어) 끝나감을 알리는 작품 중 하나이자, 그것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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