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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4. 2020

78. <김군>

감독: 강상우
제작연도: 2018

 <김군>은 강상우의 첫 장편영화이자 다큐멘터리이며,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나는 2018년 영상자료원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상영을 통해 <김군>을 처음 관람했는데, 2019년 5월 정식개봉에선 후반부 편집이 꽤 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만 아직 개봉판을 보지 못했으니 이 글은 영화제 버전 <김군>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김군>은 강상우 감독의 전작들과 궤를 같이 한다. 그의 첫 연출작인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2009)부터 <백서>(2010), <클린 미>(2014), <우리는 없는 것처럼>(2016) 그리고 그가 촬영부로 참여한 임흥순의 <위로공단>(2014)와 이동하의 <위켄즈>(2016)은 모두 소수자의 이야기이다. 강상우 본인의 작품들은 주로 퀴어 남성의 이야기이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이송희일이나 김조광수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 게이 감독들의 작품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퀴어성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게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일지라도 기존 한국 독립 게이영화들이 보여주는 '한국적 정서', '한국남성 정서'와는 전혀 다른 결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과 <백서>는 러닝타임의 중간 즈음부터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우회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또는 직면한 문제 상황에 대한 주변부로의 회피로 퀴어성을 드러낸다. <클린 미>와 <우리는 없는 것처럼>(2016)에선 이제 막 출소한 범죄자, 청소노동자, 노인, 청소년 등으로 영화의 주인공이 확장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성소수자라는 의미에서) 퀴어이기도, 퀴어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사회 주변부에 위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퀴어성을 획득한다. 이는 게이 남성 합창단을 카메라에 담은 <위켄즈>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위로공단> 등 강상우 감독이 촬영으로 참여한 작품들의 주제와도 연관된다. 그는 비가시적인 퀴어성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 

 <김군>에서 '광수'으로 지목된 사람들의 현재를 살펴보는 장면, 80년 광주 '넝마주이'들의 행적을 찾는 장면 등이 이러한 지점과 일맥상통한다. <김군>의 '역사쓰기'가 광주민주화운동 내지는 다른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들과 보이는 차이점이 여기서 비롯된다. 강상우의 카메라는 '게이 남성'에서 '주변부로서의 퀴어'로 시선을 확장하고, 이러한 이미지 서술방식을 통해 '광수'의 사진 하나를 통해 "광주사태는 북한군이 개입된 사건"이라는 지만원의 거대서사적 논리를 세밀하게 파해친다. 이 과정의 동력은 지만원의 논리에 대한 반박이지만, 그 반박이 <김군>의 중심을 차지하진 않는다. <김군>의 중심은 자신의 본래 정체성으로 가시화되지 못한 1980년 광주의 사람들을 본래적으로 가시화시키는 작업에 있다. 지만원으로 출발한 영화는 광수로 지목된 사람들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비가시화된 넝마주이까지, 군사정권의 갖은 폭압이 은폐해온 이들의 이미지를 복원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1983년생인 강상우 감독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접하지 못한 세대이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까지 봐왔던 대다수의 5·18과 관련한 작업들은 감정적으로 울분에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았다. 5·18을 경험하지 못한 80년대 세대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 측면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5·18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감정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한다.(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2534) <김군>은 울분의 감정으로 가득한 386세대의 거대서사와, 그 울분을 북한의 것으로 치부하며 어떻게든 외부의 적을 상정하려는 지만원의 거대서사, 두 축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보여주려 한다. 비가시화된 이미지를 발굴하여 현재에 펼쳐 놓는 것.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방식의 역사쓰기를 제시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그가 반박하려는 것은 지만원의 논리보단 그곳에 있었던 이들을 집단화하며 개인의 얼굴을 지우는 모든 것에 가깝다. 그 지점에서 <김군>은 강상우의 전작들과 친화성을 지니며, 그 지점에서 <김군>은 한국 현대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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