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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0. 2020

94. <언컷 젬스>

원제: Uncut Gems
감독: 조쉬 샤프디, 베니 샤프디
출연: 아담 샌들러, 줄리아 폭스, 이디나 멘젤, 케빈 가넷, 에릭 보고시안, 키스 스탠필드
제작연도: 2019


 하워드는 보석상이다. 그리고 빚이 한가득이다. 그는 빚을 메꾸기 위해 빚을 만드는 인물이다. 아내 디나와의 (아마도) 이혼 사실은 아이들은 물론 다른 가족들에게도 비밀이며, 자신의 보석상에서 일하는 줄리아와 아파트를 구해 살고 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도박처럼 다루는 그는 확률을 계산해서 최적의 배팅을 하는 고리타분한 도박사가 아니다. 그는 17개월에 걸쳐 에티오피아에서 공수한 오팔 원석을 경매에 붙여 빚을 청산하고 줄리아와 행복한 삶을 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중개인인 드마니의 소개로 자신의 보석상을 찾은 NBA 스타 케빈 가넷에게 때마침 도착한 오팔 원석을 보여준다. 원석에 마법적 힘이 있다고 믿게 된 케빈은 잠시 원석을 빌려가고, 하워드의 계획은 꼬이기 시작한다.

 <언컷 젬스>는 거짓말의 세례를 관객에게 내리 붓는다. 케빈에게 원석을 소개하는 하워드의 대사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다. 그는 우연히 히스토리 채널에서 에티오피아로 쫓겨난 ‘흑인 유대인’들이 오팔 광산에서 노동하고 있고, 그들을 통해 원석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반박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오팔 광산에서 노동하다 부상당한 광산 노동자이다. 그를 둘러싼 노동자들은 하워드의 설명과는 다르다. 하워드가 설명과 함께 보여주는 영상 속 사람들은 오팔을 영적인 장신구처럼 착용하고 있다. 하지만 오프닝 시퀀스의 노동자들은 부상당하고, 그로 인해 중국계 매니저들과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들이 유대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하워드는 자신이 구매한 오팔 원석이 자신과 같은 유대인들로부터 생산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가 구술하는 픽션은 케빈으로 하여금 원석에 마법적인 힘이 있다는 상상을 불어넣는다. 오팔 원석의 실제 값어치라던가, 그것이 얼마나 영롱한 보석인지는 모두의 생각밖에 위치해 있다. 하워드는 그 오팔이 100만 달러 가까운 가치가 있다고 믿고, 케빈은 원석에 스며든 유대민의 마법을 믿는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돌덩이 틈새로 영롱함을 슬쩍 보여주는 오팔뿐이다. 때문에 케빈이 확대경으로 원석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흥미롭다. 확대경을 따라 원석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는 카메라는 이내 원석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흔히 상상할 법한 아름다운 우주와 같은 형상이 펼쳐지고, 유대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짧은 컷으로 삽입된다. 하워드의 설명은 정제되지 않은 원석 덩어리에 불가사의한 힘을 덧붙인다. 케빈은 그의 말에 현혹된다. 하워드에 말에 낚인 케빈은 NBA 우승 반지를 그에게 맡기고 원석을 빌려 저녁에 있을 경기에서 힘을 얻고자 한다. 하워드의 거짓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영화 전체를 추동한다.

 거짓으로 쌓아 올려진 역사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진실은 입증하기 힘들고 거짓은 증가한다. 하워드는 거짓으로 쌓아 올려진 바벨탑을 건설하고 있다. 그의 거짓말은 하나의 언어이며, 그의 보석상은 국가이다. 실제로 극 중의 하워드는 자신의 국경을 통제한다. 보석상 안에서만 열 수 있는 이중의 문은 하워드의 명령을 통해 열리고 닫힌다. 국경 안에서 통하는 단 하나의 언어는 거짓이다. 보석상 안에서는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하워드는 디나에게 빚이 있음을 숨긴다. 케빈은 다음날 돌려준다던 원석을 돌려주지 않는다. 하워드는 자신이 잘 보관하겠다던 케빈의 반지를 맡기고 돈을 챙긴다. 심지어 전화를 통해 원석을 대신 돌려줄 것을 약속한 드마니는 당연한 듯이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바벨탑의 언어가 거짓인 만큼 모두의 말은 거짓이다. <언컷 젬스>의 촬영감독인 다리우스 콘지는 “매우 매우 긴 줌 렌즈”를 사용해 영화를 촬영했다고 말한다. 350mm 아나모픽. 영화는 극단적으로 좁은 수준의 시야를 지닌 렌즈를 통해 인물들을 담는다. 그 결과물은 당장이라도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인물들을 가까스로 스크린에 붙잡아 두는 숏들의 장력이다. 확대경을 통해 원석을 바라보던 케빈은 넋을 잃고 진열장의 유리에 기댔다가 유리를 깨고 만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원석 안에 들어간 카메라는 유리가 깨지면서 밖으로 튕겨지듯 나온다. 이 순간 케빈이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하워드의 거짓 역사는 믿음이 된다. 이야기는 정제되지 않은 원석의 표면을 뚫고 하워드의 보석상으로, 뉴욕으로, 농구 경기가 벌어지는 농구코트로 향한다. 원석은 붕괴가 예고된 바벨탑을 수호하는 거짓의 원천이며, 그것이 보석상을 나가는 동시에 빚쟁이들이 들이닥치고 하워드는 붕괴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후반부, 길고 긴 과정 끝에 원석을 다시 손에 넣은 하워드는 케빈에게 그것을 판다. 빚쟁이들이 보석상에 들이닥치는 것을 CCTV로 발견한 하워드는 케빈에게 얻은 돈을 곧바로 케빈이 출전하는 경기에 건다. 마권을 사기 위해 경마장 앞에 줄을 선 경마꾼들이나 선수의 사생활 같은 정보까지 체크하는 일련의 스포츠 도박꾼들과 하워드는 다르다. 그가 믿는 것은 믿음뿐이며, 믿음의 원천은 원석이다. 그는 거짓으로 쌓은 자신의 국가 안에서, 국경에 빚쟁이들을 문자 그대로 가둔 채, 자신의 믿음이 진실이 되는 순간을 고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 된다. 보스턴 셀틱스는 승리했고, 케빈 가넷은 하워드가 판돈을 건 점프볼, 리바운드, 득점을 모두 성공한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케빈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중요한 건 승리예요. 이기면 다 닥치고 조용해지죠. 회의론자도, 안티 팬들도, 다 사라집니다. ... 농구는 제게 보석 같은 존재한 점이 가장 중요해요." 그러니까, 하워드는 승리했어야 했다. 그의 바벨탑은 무너져서는 안 됐다. 빚쟁이들은 입 닥친 채 하워드가 주는 돈을 받고 사라졌어야 했다. 그런데 사라진 것은 하워드이다. 하워드가 보안문과 보안문 사이에 가둬 둔 빚쟁이는 하워드가 그를 풀어주자 마자 하워드의 얼굴에 총알을 박는다. 하워드의 언어인 거짓은 종결을 맞는다. 바벨탑은 신의 음성과도 같은 총소리에 무너진다. 빚쟁이들은 바벨탑의 나머지 잔해도 마저 부숴버리겠다는 듯이 보석상의 진열장을 부수고 보석들을 챙긴다. 쓰러진 하워드의 모습과 케빈의 경기 소감, 스포츠 바에서 현금화된 돈을 찾는 줄리아의 모습이 교차해 등장한다. 장력을 견디다 못해 원석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는 하워드를 패자로 만들어 닥치게 하고, 그 이야기를 여전히 믿는 승자들(케빈, 드마니, 하워드의 아들)은 떠든다. 2010년 가을에서 2012년 봄에 걸친 하워드의 거짓 픽션은 역사, 자본, 권력 등에 의해 그것들과 함께 침몰한다. 에티오피아 광산에서 채굴되는 원석 속으로 들어가 하워드의 대장 밖으로 나온 오프닝 시퀀스는 하워드 얼굴의 총알구멍으로 들어가 원석의 내부 같은 곳으로 보이는 공간을 지나 우주로 나온다. 하워드의 여정이 끝난 곳은 단순히 사후세계와 같은 초현실적인 세계가 아니다. 픽션이 그것을 붙잡아 두려는 스크린의 장력을 기어코 뚫고 나오는 것이 <언컷 젬스>의 괴상한 동력이며, 하워드는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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