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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0. 2020

93. <15시 17분 파리행 열차>

원제: The 15:17 to Paris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스펜서 스톤, 앤서니 새들러, 알렉 스칼라토스
제작연도: 2018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 필모그래피의 거의 전부를 통해 그려온 미국을 가장 기이하게 다룬 작품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2016), <라스트 미션>(2018), 아직 관람하지 못한 <리처드 주얼>(2019) 등과 함께 살펴본다면 이 영화는 더욱 기이하다. 다섯 편의 영화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언급한 영화 중 앞의 두 편은 미국적 영웅을 다루고 있고, 뒤의 두 편은 영웅은 될 수 없으나 (2010년대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영웅적 행위를 시도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정확히 그 사이에 놓인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얼떨결에 영웅이 된 세 명의 미국인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스펜서, 안토니, 알렉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나고,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향하는 5시 17분 열차를 탄다. 군인이었던 이들은 갑자기 벌어진 테러를 저지하고, 영웅이 된다. 

 영화는 10여분의 테러 상황을 그리기 위해 이들의 학창시절부터 각자 군에 입대하고 학업을 이어가던 시기까지를 모두 그려낸다. 세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전문 배우들이 연기했지만, 성인이 된 이들은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이 연기했다. 이들은 자신의 유럽여행을 복기함으로써 픽션 안으로 들어온다. 베니스, 로마, 베를린, 암스테르담 등지를 돌아다니는 이들의 여행 장면은 여행 이전의 어린 시절을 촬영한 장면들에 비해 아마추어적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여행 당시에 직접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을 법한 구도로 이들의 유럽여행이 영화에 담겼다. 이 영화를 본 것은 내가 유럽여행에 다녀온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세 사람의 여행 경로와 나의 경로가 겹치는 것은 로마와 베니스 뿐이었지만, 이들이 들른 거의 모든 관광지는 영화를 보기 단 며칠 전, 혹은 영화를 보게 된 당일에 내가 갔던 장소이다. 내가 직접 아이폰을 들고 촬영한 관광지의 풍경과 <15시 17분 파리행 열차>에서 세 주인공이 도착한 관광지의 풍경은 거의 동일하다. 

 내 유럽여행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영화에서 실제 벌어진 일들을 픽션에 기입하는 방식 때문이다. 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아역 배우들이 등장하는 초반부를 지나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연기하는 중반부에 접어들면 영화는 그 사실 하나만을 동력으로 삼는다. 사실 이들의 영웅적 행위는 러닝타임의 극히 일부분이며, 영화 초반부에 다뤄지는 유럽여행 이전의 과거는 이들의 영웅적 행위로 귀결되는 영화의 이야기에서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스트우드는 이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이 지점에서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라스트 미션>과 <리처드 주얼> 사이에 놓인다. 영웅과 영웅적 행위자,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그 사이에서 진동하던 세 사람을 픽션 안으로 끌어와 영웅으로 명명한다. 

 이들이 미국으로 돌아와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훈장을 받는 장면은 실제와 연출된 장면이 뒤섞여 있다. 보통의 실화 바탕 영화라면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상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픽션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배우는 실제 인물과 동일하다. 이들의 나이듦을 통해, 그리고 TV 방영용 화면과 영화용 화면이라는 두 가지 소스의 촬영분을 통해 가까스로 구별할 수는 있지만 그조차 완전하진 않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두 종류의 화면이 마치 같은 소스인 것처럼 다룬다. 실제와 픽션이라는 두 종류의 이미지는 둘 사이의 거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세 주인공의 신체를 통해 묶인다. 이 지점이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를 기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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