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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5. 2020

<좋은 날> 돈 헤르츠펠트 2011

 2010년대 가장 주목받는 인디 애니메이션 감독인 돈 헤르츠펠트가 2011년작 중편 애니메이션(러닝타임 62분) <좋은 날>(It's Such a Beautiful Day)을 자신의 비메오 채널을 통해 한시적으로 무료 공개했다. (https://vimeo.com/ondemand/itssuchabeautifulday/ 쿠폰코드: IAMSTUCKINSIDE)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 각국의 블루레이 출시사, 배급사, 미술관, 작가 개인 등이 각자의 채널을 통해 온라인 상영 및 전시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그 대열에 돈 헤르츠펠트도 참여한 것이다. 아직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물론, 그의 다른 작품들도 접하지 못한 채 <좋은 날>로 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돈 헤르츠펠트가 연출, 각본, 작화, 내레이션 등을 모두 도맡은 <좋은 날>은 퇴행성 뇌 장애를 앓고 있는 빌의 이야기를 다룬다. 빌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빌이 기억해내는 기억들과 그가 지금 보는 것들이 산만하게 프레임을 채운다. 돈 헤르츠펠트는 기억이라는 소재를 선형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를 남발하며 빌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성된 타임라인을 복잡하게 오가지도 않는다. 빌의 기억은 문자 그대로 프레임 위에 산발적으로 퍼트려진다. 연필로 그린 단순한 작화의 애니메이션, 길, 바다, 문, 바위, 풀밭 등의 실사 이미지는 만화의 말풍선처럼 프레임 곳곳에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리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엔 기억의 주체임과 동시에 기억의 주체성을 잃어가는 빌 본인도 포함되어 있다.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영화의 두 번째 챕터엔 빌의 일생을 선형적인 타임라인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짧게 등장한다. 하지만 빌의 타임라인을 그리는 선은 점선이다. 빌이 타임라인 위의 어느 지점에 있든 자신이 위치한 곳이 아닌 나머지 지점은 모두 점으로 존재한다. <좋은 날>은 그것을 작품의 형식적 동력으로 삼는다. 빌이 떠올리는 순간들은 극도로 추상화된 시간의 점들이다. 여기엔 각각의 기억들에 대한 거리감마저 상실되어 있다. 겹겹의 층으로 묘사되는 베르그송의 기억-이미지 도식은 <좋은 날>에서 분해된다. 이 영화엔 사라져 가는 빌의 정신-기억들이 프레임 위해 흩뿌려지는 첨점만이 존재한다. 흔히 현재라는 평면 위에 뒤집어진 원뿔이 놓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베르그송의 또 다른 도식은 돈 헤르츠펠트의 프레임 위에 나타나는 수많은 첨점, 즉 분해된 기억-이미지들이 하나의 프레임 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구성으로 변형된다. 현재라는 평면에서 과거는 돌출되고 미래는 갑작스레 당도한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거의 모든 프레임은, 우연히 발견한 사진앨범에 담긴 자신의 모든 타임라인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프레임 내부에 앨범을 들여다보는 자신마저 포함된 모습에 가깝다.

 ‘졸라맨’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극도로 추상적인 작화와 함께 등장하는 구상 그 자체인 실사 이미지들은 현재의 프레임 속에서 충돌하며 기억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추상과 구상을 오가고, 기억의 장면들에는 계속해서 무엇인가 덧씌워지며 수정된다. 사실 여기서의 실사 이미지들은 고정된 현재, 즉 프레임 위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빌이 목격하고 있는 형상들이다. 기억을 상기시키고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매개하는 기억의 주체는 기억의 불확실성, 그리고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안정성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고수한다. 그것이 아무리 뒤흔들린다 해도 그는 그 자리에 있다. 이는 기억에 대한 형식적 해체가 프레임 위에 동시다발적으로 기억-이미지들을 끌어온다면, 프레임을 지탱하고 있어야 할 기억의 주체자가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이다. 그가 기억을 잃어가는 주체라는 명제만큼 그가 기억을 상기하는 주체라는 사실은 명제 또한 선명하게 전제된다.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빌의 기억들인 추상적 이미지와 현재에 발 붙어 있는 그가 목격하는 현재의 선명한 실사 이미지들이 결합되는 모습은 아름답다. 영화의 마지막에 와서야 그는 그가 현재라는 평면 위에 선명하게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기억의 주체는 곧 현재의 주체라는 선언.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가장 근본적인 실존의 전제를 깨달은 빌은 마침내 “It’s such a beautiful day”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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