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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1. 2020

<주디> 루퍼트 굴드 2019

 르네 젤위거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주디>는 1939년 개봉한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전 세계적 스타가 된 배우 겸 가수 주디 갈란드의 말년을 다룬 작품이다. 르네 젤위거가 주디 갈란드를 연기했다. 영화는 40대 중반이 된 주디가 밤 공연을 통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가,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영국에서 온 공연 제안을 수락해 런던으로 향한 뒤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주디의 말년과 함께 <오즈의 마법사> 촬영 전후 즈음으로 보이는 주디의 아역배우 시절이 간간히 등장한다. 다르시 쇼가 연기하는 어린 주디는 모든 것이 통제되고 하루 15시간을 넘어가는 노동의 생활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MGM의 수장인 루이스 B. 메이어와 스튜디오 관리자는 그에게 약을 먹이고 강압적으로 식단을 조절하며 혹사한다. 

 <주디>는 전적으로 르네 젤위거의 퍼포먼스에 의존하고 있다. 극 중 몇 차례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는 르네 젤위거의 라이브를 통해 촬영되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투여된 약물로 인해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말년의 주디 갈란드의 얼굴과 몸짓을 표현하는 르네 젤위거의 얼굴과 몸짓이 이 영화를 지탱한다. 그의 몸을 통해 재현되는 주디 갈란드의 말년은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이라는 이상의 착취구조를 폭로하는 지표이자, 어린 주디의 모습부터 르네 젤위거라는 현재의 스타까지를 관통하는 표상이다. 르네 젤위거의 퍼포먼스를 클로즈업으로, 미디엄숏으로, 롱 숏으로 담아내는 것에 그치는 연출의 무능함 속에서 ‘스타’의 이미지는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르네 젤위거가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트로피를 손에 쥐는 예정된 사건은 인간 주디 갈란드보단 스타 주디 갈란드를 지시하는 명예, 인기, 부, 가능성 등의 허영적 지표를 쫓아 런던까지 찾아온 미키(핀 위트록)의 행동과 유사하다. 할리우드는 케이크의 맛은커녕 케이크를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생산해내고, 우리는 그 사람이 온갖 것을 맛있게 먹는 모습의 허영을 쫓는다.

 <주디>의 핵심은 그 허영을 자기도 모르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는 전적으로 르네 젤위거의 퍼포먼스가 해낸 성취다. 변덕스러운 성격을 지닌 비운의 스타의 말년을 쫓아가는 이 영화의 초라한 기획은 다양한 상황에 던져진 주디의 죽어가는 몸을 통해 살아난다. 공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온 주디가 그의 열렬한 팬인 게이 커플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집으로 가는 장면이 한 번 등장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디 갈란드는 1940~60년대의 게이 아이콘이다. 80년대 흑인들이 홍콩 쿵푸영화에 자신을 동일시한 것처럼, 동성애로 인해 체포되기도 했던 당시의 게이들은 착취당하고 수많은 역경을 겪어온 주디의 삶에 자신을 동일시했다. 영화 속 주인공 혹은 그를 연기한 실제 배우의 삶에 자신의 삶을 대입하고 동일시하는 것은 썩 보편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경우 영화와 스타의 삶이 만들어내는 허영은 실체를 갖는다. 게이들은 <오즈의 마법사> 등 주디 갈란드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들에서 캠프적 취향을 발견했고, 주디 갈란드의 삶에 동화되었다. <주디>의 평범한 각본은 이 한 장면에서만큼은 생명력을 얻는다. 영화 전체에 걸쳐 있는 할리우드적 허영은 러닝타임 전체에 굳건히 존재하는 르네 젤위거-주디 갈란드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접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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