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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4. 2020

<엽문 4: 더 파이널> 엽위신 2019

 2008년부터 이어진 <엽문>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엽문 4: 더 파이널>은 1964년을 배경으로 암 판정을 받은 노쇠한 엽문(견자단)이 아들의 유학을 알아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가 현지의 인종차별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엽문은 자신의 제자 이소룡(진국곤)의 초대를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만, 그곳의 중국 교포 총회의 만회장(오월)은 서양인들에게 중국 무술을 가르치는 이소룡을 못마땅해한다. 그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교포 총회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소룡의 제자 중 한 명인 미 해군 하사 하트만(오건호)은 중국 무술을 해병대 신병훈련 과정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지만, 인종차별주의자인 교관 바턴(스콧 앳킨스)은 이를 거부하고, 해군 내 동양인들에게 모욕을 준다. 인종차별로 인한 다양한 상황이 뒤섞인 가운데 도착한 엽문은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한번 무술을 사용한다.

 첫 두 편의 시리즈가 흥행하자 국내에선 <엽문 3>, <엽문 4>, <엽문 외전> 등의 제목을 달고 개봉한 영화가 여럿 제작되었다. <엽문> 시리즈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준비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왕가위는 엽문의 일대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 <일대종사>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3년엔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엽문 일대종사>가 중국에서 방영되었다. 엽문을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2010년대 내내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엽문은 1930~40년대 일제강점기 시점에 도장을 차리고 일제에 대항했던 인물이다. 견자단의 첫 두 <엽문>은 그 시기를 다룬다. <엽문 3: 최후의 대결>은 일제 패망 이후를 다루지만, 홍콩 및 중국의 내외적 상황 안에서 그 영향이 남아있는 상황을 그린다. 그리고 <엽문 4>는 아예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백인들의 동양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견자단이라는 걸출한 무예가이자 액션 스타를 주연으로 삼은 <엽문> 시리즈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소위 말하는 ‘국뽕’ 영화였다. 하지만 마지막 영화인 <엽문 4>는 (물론 여전히 중화주의적 성격이 남아 있지만) 그것을 많이 줄이고, 인종차별이라는 범아시아적 주제를 내세운다. 차별의 주체가 일본에서 미국의 백인으로 옮겨 갔을 뿐이지만, 이야기 자체는 조금 더 폭넓게 공유될 수 있는 주제를 내포한다.

 <엽문> 시리즈의 각본은 대체로 형편없었다. 그것은 이번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엽문과 만회장의 딸이 만나는 에피소드, 하트만 하사와 바턴 교관의 에피소드, 이소룡과 교포 총회의 대립 등은 제대로 엮이지 못한 채 산발적인 에피소드의 나열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엽문은 대체로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 해병대 신병들에게 가라테를 가르치던 백인 무예가가 갑작스레 중국의 추석 행사에 침입한다던가, 하트만과 바턴 교사의 대립이라던가, 만회장의 딸이 겪는 인종차별은 엽문이 알지 못하는 상태로 전개된다. 결론적으로 모든 에피소드는 엽문에게로 귀결되는데, 여기서 엽문에겐 단순히 해결사로서의 역할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첫 두 편의 영화에서 일본인들을 상대하던 엽문의 모습은 중국인, 더 나아가 동양인 전체에게 부여되는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아시아 공동체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변모된다. 바턴을 비롯한 백인 캐릭터들이 인종차별적 언행을 할 때 중국만을 콕 집어 언급하는 것보다 ‘아시안’이라고 통칭해버리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엽문을 범아시아적 주체로 내세우려는 시도에 가깝다. 차별은 차별 대상의 밑에서 흐르다가 대상 앞에 드러난다. 때문에 개별 에피소드의 불안정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엽문에게만 비가시적인 형태로 작동하던 에피소드들이 엽문에게로 귀결되는 후반부는 확실한 쾌감을 제공한다.

 엽문으로의 귀결을 가능케 하는 장치들은 당연하게도 액션이다. 그간 임달화, 홍금보, 마이크 타이슨 등 홍콩의 액션 스타는 물론 해외의 스타까지 기용해온 <엽문> 시리즈는 마지막 편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액션 스타를 동원한다. 드라마 <이소룡 전기>에서 이소룡을 연기했던 진국곤은 이번 영화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출연하고, 성룡의 미국 영화들이나 서극 감독의 영화 등에 출연했으며 <익스펜더블> 시리즈에도 출연했던 스캇 앳킨슨이 영화의 악역으로 출연한다. 특히 스캇 앳킨슨은 실제로 가라테 등 동아시아 무술을 연마했던 무예가이기도 하다. 엽위신 감독과 원화평 무술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액션 시퀀스를 설계한다. 가령 이소룡과 가라테 수련자들이 벌이는 길거리 싸움은 <정무문>이나 <맹룡과강> 등의 이소룡 영화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액션이 짜였으며, 엽문과 만회장의 대결은 경극의 변형에서 출발한 쿵푸영화의 전통에 충실한 아름다운 안무처럼 짜였고, 엽문과 가라테 수련자, 만회장 및 엽문과 바턴 교관과의 싸움은 타격감에 충실하다. 때문에 <엽문 4> 격권영화의 타격감을 오랜만에 즐길 수 있는 작품이며, 그 주제 또한 현재에 충실하기도 하다. 죽어가는 엽문의 몸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견자단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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