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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9. 2020

<라라걸> 레이첼 그리피스 2019

 대대로 기수 집안인 페인 가문의 10남매 중 막내 미셸(테레사 팔머)은 호주 최대이자 세계 최대의 경마 대회 멜버른 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꿈이다.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한때 기수였던 아버지 패디(샘 닐)가 미셸과 다운증후군을 앓는 스티비(스티비 페인-본인 출연)를 비롯한 10남매를 키우고 있다. 10남매 중 8명이 기수 혹은 경주마 트레이너인 집안이지만, 미셸이 멜버른 컵은커녕 프로 경마 기수로 나아가는 것은 힘겹기만 하다. 3,200번의 출전, 16번의 골절, 7번의 낙마, 수차례의 역경을 딛고 미셸은 드디어 멜버른 컵에 출전한다. <라라걸>은 2015년 멜버른컵의 155년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여성 기수 미셸 페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배우 출신 감독 레이첼 그리피스의 첫 장편영화이며, <웜 바디스>, <라이트 아웃>, <헥소 고지> 등으로 이름을 알린 테레사 팔머가 주연을 맡았다.

 <라라걸>이 소재로 삼은 이야기는 이미 영화적이다. 3,200번의 출전, 16번의 골절, 7번의 낙마라는 미셸 개인의 기록 외에도 기수 집안에 10남매라는 점 또한 영화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법한 소재가 미셸의 삶에 가득하다. 그리고 영화는 익숙한 스포츠 드라마이자 성차별로 가득한 업계의 편견을 뚫고 성공을 거두는 여성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를테면 <히든 피겨스>나 <세상을 바꾼 변호인>, 혹은 <슈팅 라이크 베컴>이나 <그들만의 리그>와 같은 영화들 말이다. 아쉽게도 <라라걸>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만큼 성공적이지 못하다. 실화를 그대로 재현하기에 급급한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멜버른 컵까지 미셸의 삶을 98분의 러닝타임 속에 욱여넣는다. 관객이 미셸과 스티비를 제외한 그들의 다른 남매들이 누가 누군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영화가 끝나버릴 정도이다. 몇몇 숏은 조금 더 이어져야 하는 순간에 끊어지며, 거친 편집을 땜질하는 음악은 과하게 사용된다. 빠르기만 한 전개 속에서 미셸의 캐릭터는 평면적으로만 다뤄지며, 관객이 보게 되는 미셸의 첫 부상 이후의 나머지 부상들은 자막으로 간단하게 처리되고 끝난다.

 물론 <라라걸>에도 흥미로운 순간들은 존재한다. 실제 미셸 페인의 오빠이자 호주 최고의 마필 관리자 중 한 명인 스티비 페인이 본인 역으로 출연해 연기하는 모습이 종종 영화에 섞여 들어가는 실제 자료화면과 뒤섞이는 부분들은 실화와 <라라걸> 사이의 4년이라는 짧은 시차를 느끼게 해주어 스티비, 그리고 미셸의 이야기를 현재적인 것으로 끌어온다. 155년 역사상 5명의 여성 기수만이 출전한 멜버른 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셸의 이야기와 다운증후군을 앓지만 호주 최고의 마필 관리자가 된 스티비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라라걸>의 유일한 장점이다. 결국 <라라걸>은 미셸 페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다는 가장 단순한 의욕만이 앞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느껴진다. 그의 이야기가 지닌 가치를 명확하게 전달하긴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화적 야심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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