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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6. 2020

<건즈 아킴보> 제이슨 레이 하우덴 2020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마일즈(다니엘 레드클리프)는 여러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그는 범죄자들을 고용해 살인 대결을 펼치게 하는 실시간 스트리밍 플랫폼 ‘스키즘’에 반감을 갖고, 채팅에 참여해 스키즘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내 스키즘의 운영자 릭터(네드 데네히)와 그의 일당이 마일즈의 집으로 들이닥치고, 기절했다 깨어난 마일즈의 양 손엔 권총이 박혀 있다. 릭터는 그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키즘의 랭킹 1위인 닉스(사마라 위빙)와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한다 말한다. 마일즈는 24시간 안에 닉스와 결판을 지어야 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한 장르영화제에서 호평받았던 <데스가즘>의 연출자이자, 피터 잭슨의 웨타 디지털에서 VFX 아티스트로 일했던 제이슨 레이 하우덴의 신작 <건즈 아킴보>는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중계되는 살인 게임을 소재로 삼았다. <우먼 인 블랙>, <혼스>, <스위스 아미 맨> 등 장르영화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다니엘 레드클리프와, <사탄의 베이비시터>, <메이헴>, <레디 오어 낫> 등 몇 편의 호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이름을 알린 사마라 위빙이 주연을 맡았다.

 ‘아킴보’는 원래 허리춤에 양 손을 대고 있는 자세를 의미하는 용어로, 여러 FPS 게임과 영화(주로 서부극)를 통해 양손에 무기(주로 총)를 들고 있는 자세로 뜻이 확장되었다. 결국 <건즈 아킴보>라는 제목은 ‘쌍권총’인 셈이며, 양손에 총이 박혀버린 마일즈의 상황은 ‘건즈 아킴보’ 그 자체다. VFX 회사 출신이자 <데스가즘>처럼 확고한 취향을 밀고 나가는 영화를 연출했던 제이 레이 하우덴은 어처구니없이 스키즘의 살인 게임에 말려들게 된 마일즈의 상황을 계속 빙빙 도는 카메라와 정신없는 음악 및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의도치 않게 신체개조당한 뒤 폭력적인 상황 속에 내던져진다는 이야기는 <하드코어 헨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그 작품은 영화 전체를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하여 FPS게임의 감각을 끌어온다. 반면 <건즈 아킴보>는 소위 말하는 게임의 감각 혹은 체험을 끌어오려고 애쓰지 않는다. 물론 몇 차례 롱테이크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액션이나 상황의 체험보단 마일즈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표현하는 방법에 가깝다. 대신 영화는 드론이나 CCTV 화면을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 되는 마일즈와 닉스의 대결을 보는 관객 혹은 코멘트를 더하는 BJ들의 대사를 삽입한다. 때문에 <건즈 아킴보>는 1인칭 시점이나 롱테이크를 통해 게임성을 끌어오려는 영화들보단, <엑시트>에서 BJ들이 드론을 통해 두 주인공의 탈출을 중계하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관람 자체가 게임이 되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너브> 등의 영화에서 수차례 사용된 소재이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중계되는 살인 게임이라는 소재의 익숙함 자체는 양 손에 총이 박혀버린 마일즈의 상황이 주는 코미디라던가, 이런저런 사연과 함께 나쁘지 않은 액션을 보여주는 닉스의 캐릭터를 통해 어느 정도 상쇄된다.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라던가, 현실적이라기보단 게임 속 그래픽처럼 묘사되는 피의 묘사 등이 감독의 전작 <데스가즘>과 마찬가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다만 영화 초반부에서 묘사된 닉스의 전투력이 마일즈를 상대하는 순간 너프된다거나, 종종 공간을 건너뛰는 편집이 등장하는 등의 아쉬움이 남는다. 마일즈는 현실에서의 폭력에 반대하는 총기 소지 반대주의자이자 베지테리언이지만 그의 방에는 <테미네이터 2>나 <람보>의 포스터가 붙어있고 각종 액션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피규어가 가득하며 [둠]과 같은 게임을 즐긴다. 스키즘에 반대하면서도 그들에게 온라인에서의 폭력을 가한다. 양 손에 박혀버린 권총은 그의 모순적인 상황이 표출된 것과 같다. 다만 영화가 그 모순을 잘 다루고 있지는 못하다. 후반부 들어 갑자기 잘 싸우게 된 마일즈의 모습은 영화가 다루려는 주제와 장르적 쾌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나온 애매한 결과물이다. 닉스에게 부여된 사연들은 극을 전개하기 위한 장치 이상의 것을 수행하지도 못한다. 정신없이 자신의 영화적, 음악적 취향을 과시하던 <데스가즘>에 비해 <건즈 아킴보>는 잔재주가 영화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물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는 액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만족감은 제공하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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