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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0. 2020

2020-04-10

1. 넷플릭스 <킹덤>은 시작부터 지루한 기획이었다. 왕세자, 중전, 영의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점에서 <킹덤>은 필연적으로 왕권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 지점에서 이미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르물들, 가령 같은 좀비를 내세웠던 <창궐>부터 <물괴>, <조선명탐정> 시리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혹은 더 확장하여 <명당>이나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같은 독특한 소재를 지닌 사극 등과 큰 차이를 지니지 못한다. 조선시대에 좀비가 출현하든, 역병을 퍼트리는 괴수가 나타나든, 마약이 퍼지거나 흡혈괴물이 나타나든, 서빙고를 터는 하이스트물이든, 혹은 풍수지리를 도입하거나 왕의 대역을 내세운 코미디를 펼치든, 모든 이야기는 왕의 자리를 놓고 펼쳐지는 다툼으로 귀결된다. 여기에는 현실정치를 조선 왕조에 대입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하다. <창궐>은 좀비와 같은 자한당의 공격 사이에서 시민의 촛불혁명을 통해 왕으로 추대된 문재인을 주인공에 대입한다. <광해>는 노무현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고, <물괴>는 각종 참사와 재난의 알레고리를 장르영화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괴물>의 어설픈 짝퉁에 불과하다. 시즌2까지 모두 본 상태에서 <킹덤>은 그저 만듦새 면에서 조급 앞서는 수준에 불과하다.


2. <엽문 4: 더 파이널>을 보고 시리즈 전체를 다시 봤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엽문의 성격은 "폭력을 즐기지 않지만 불의에 대항하는 무술가"이다. 여기서 불의는 대게 인종차별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1편은 중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 홍콩을 배경으로 한 2, 3편은 홍콩에 온 서양인들의 인종차별, 4편은 아예 무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미국 내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메인 테마로 내세운다. 이 테마는 3편에 출연했던 장천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엽문 외전>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된다. <엽문>이 MCU가 출범한 2008년에 시작되서 MCU가 일단락된 2019년에 끝났다는 점이 사뭇 흥미롭다. 

p.s. 같은 엽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생각보다 심심했다.


3. 켈리 레이차트의 <웬디와 루시>를 이제야 봤다.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 속 모나의 여정에서 어느 한 장소를 뚝 떼어와 80분으로 늘린듯한 인상의 작품이었다. 웬디와 루시가 알레스카로 향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여느 로드무비의 시작과 유사하지만, 웬디와 루시는 오래건의 한 동네에 갇히게 된다. 이동하지 않는 로드무비라는 역설은 웬디가 겪는 아이러니컬한 상황들로 파생된다. 힘겨운 출발의 로드무비인 데뷔작 <초원의 강>이나 느슨하게 연결되어 원형의 궤적을 그리는 <어떤 여자들>를 떠올려본다.


4. 고다르가 인스타 라이브 하는걸 볼 수 있다니. 전세계 시네필들이 거기에 대고 "eng plz"라던가 "왜 아녜스 바르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나요?" 같은 댓글을 다는 것을 볼 수 있다니. 2018년 칸영화제에서 고다르가 화상통화로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을 기억하지만, 인스타 라이브에 등장한 고다르는 어딘가 생경하고, 동시에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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