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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1. 2020

2020-04-11

1. 새벽에 1983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봤다. 컬트 걸작 <하우스>를 연출한 감독의 작품답게, 그야말로 시공간을 달리는  모습을 연출해내는 대담함은 호소다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을 능가하는 이미지를 선사한다. 영화를 다 보자마자 켠 트위터에서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부고 소식을 봤다. 나는 이제 막 <하우스>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 단 두편만을 봤을 뿐이었다. 3년 전에 지인이 주최한 상영회에서 <하우스>를 처음 접하고 꼭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영화들을 챙겨봐야 생각했지만, 국내에선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2.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부고 소식을 듣고 캐리 피셔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떠올랐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심야 시사회를 보고 나오는 길에 트위터에 접속하자마자 가장 처음 본 트윗이 캐리 피셔의 부고였다. <로그 원>의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희망> 속 캐리 피셔의 모습을 재현한다. 그 날 캐리 피셔 커리어의 시작과 종료를 한순간에 보았다는 기분에 어딘가 허망했다.


3. 새벽에 본 다른 영화인 구로사와 기요시의 데뷔작인 로망포르노 <간다천음란전쟁>은 <큐어>, <회로>,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 등의 다른 작품들에서 접할 수 있는 스타일의 데모 버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창>처럼 망원경으로 하천 건너편 아파트를 염탐하는 장면에선 히치코키언으로써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가장 재밌는 부분은 보통 문자로 써 놓는 엔드크레딧 대신 내레이션으로 영화에 참여한 스탭들의 이름을 읊는 것이었는데, 조감독으로 참여한 수오 마사유키와 만나 쿠니토시의 이름을 보며 80년대 일본 영화감독 등용문이 로망포르노였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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