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어서 좀비가 된 사람들

<부산행>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애니메이션 <서울역>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스포일러 있음

가출하고 남자친구 기웅(이준)과 함께 여관생활을 하고 있는 혜선(심은경). 돈이 떨어지자 기웅은 혜선의 원조교제를 알선해 돈을 벌려고 한다. 몇 차례 겪었던 상황이기에 혜선은 이를 거부하고 길거리로 나온다. 혜선이 길거리를 방황하던 때, 원조교제 사이트에 혜선의 사진이 올라온 것을 발견한 혜선의 아버지 석규(류승룡)가 혜선을 찾아 나서고, 기웅을 만나 함께 혜선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와중 서울역에 좀비가 발생하며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부산행>의 프리퀄로 홍보되고 있지만, 스토리상의 연결고리는 적다. <부산행>의 첫 좀비인 심은경이 <서울역>의 주인공 혜선으로 출연하지만, 단지 배우가 겹치는 수준이다. 심지어 옷차림을 보면 계절도 다르다. 연상호 감독의 말 대로, 같은 세계관 속의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듯하다. 전형적인 가족주의 영웅서사였던 <부산행>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이야기이며,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인 <e돼지의 왕>, <사이비>처럼 지옥도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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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사이비>에서 드러난 연상호 감독의 염세주의적 모습이 <서울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니, 그의 영화는 염세주의로 가득하다. <부산행>을 제외한 그의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이 사회에 만족하는 부분이 다 한 가지도 없다.’라고 말하는듯하다. 게다가 언제나처럼, 비유 없이 직설적으로 쏟아 내버린다. 종북몰이를 비판하고 싶으면 종북몰이하는 사람을 등장시키고, 집 없는 사람들의 애환을 “난 집이 없어”라는 대사로 뱉어버린다. 돌려 말하지 않고 곧바로 폐부를 찌르는 연상호식 화법이 드러난다.

일정한 구조를 두고 펼쳐지는 서사가 아닌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의 집합 같은 영화이다. 맥락없이 등장하는 종북몰이 등이 뜬금없이 등장해 스토리 전개를 방해한다는 평이 많다. 전개를 해치는 부분은 맞지만, 어떤 사안에 대한 사회의(SNS, 커뮤니티, 뉴스 미디어 등의) 반응과도 닮아있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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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사람들, 노숙자와 가출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영화 전체에 ‘집’이라는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경찰들에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들은 집이 없기에 가장 먼저 죽었고, 가장 먼저 좀비가 되었다. 영화는 여관에서 서울역, 모델하우스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의 거처에서, 집과 똑같아 보이지만 집이 아닌 공간으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 혜선과 기웅, 그들 주변의 노숙인들이 머물 자리는 없다. 돈 뿐만 아니라 공권력,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까지 거처를 얻길 거부당한다.

영화의 마지막이 모델하우스에서 끝난다는 것이 연상호스러운 지점이었다. 좀비들을 피해 건물들 사이로 위태롭게 이동하던 혜선은 어느 건물 베란다에 떨어진다. 들어가 보니 그 곳은 집이었고, 혜선은 애타게 사람들을 부른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그곳이 모델하우스였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집도, 누구의 집도 아닌 모델하우스에서 잠시 잠드는 모습에 집이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는 어디일까 하는 고민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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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장면에서 자신이 혜선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던 석규가 실은 혜선의 포주였다는 반전이 등장한다. 반항하는 기웅을 죽이고 돈을 훔쳐 달아난 혜선을 잡기 위해 모델하우스 곳곳을 돌아다니는 석규는 이런 곳에서 한 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수많은 좀비들을 뚫고 혜선을 찾은 이유가 돈 때문이었고, 모델하우스의 가장 큰 집으로 들어가선 “이런 방에서 떡 한 번 쳐봐야 하는데”라는 대사를 날리며 물욕을 드러낸다. 결국 그는 그 방 침대 밑에서 좀비로 변한 혜선에게 물어 뜯겨 최후를 맞이한다. 사운드만 바꿨다면 그가 원하던 “이런 방에서 떡 한 번 쳐”보는 상황 같은 장면이다. 물욕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진다.

영화 속 노숙자들이 잠드는 곳의 벽엔 언제나 광고가 걸려있다. 그 광고들은 모두 아파트 분양, 부동산 투자 등에 대한 광고들이다. 집 없는 노숙자들은 그런 광고판 뒤에 모포를 숨겨두고, 그 광고판 밑에서 잠든다. 팔리길 기다리는 집들은 저렇게 많은데, 노숙자들과 가출한 혜선, 기웅의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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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항상 대사가 튄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어로 된 애니메이션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입모양이 안 맞는 것도 아닌데 대사가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이다. 그나마 심은경과 류승룡은 배우의 얼굴이 연상되어 나쁘지 않았지만, 이준의 경우가 많이 아쉬웠다. <부산행>은 다소 뜬금없는 음악의 사용으로 분위기를 해친 부분들이 있었다. <서울역>은 그런 부분이 없었다. 좀비들이 내는 괴상한 사운드도 <서울역>의 느낌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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