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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4. 2020

<씨 피버> 니사 하디만 2019

 해양동물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는 시본(헤르미온느 코필드)은 교수에게 실습을 권유받는다. 그는 같은 학교를 나온 조니(잭 히키)의 도움으로 낡은 어선인 ‘니브 킨 오이르’에 탑승한다. 선장인 제라드(더그레이 스콧)는 높은 수확을 노리고 제한구역인 수역으로 향한다. 배에 무언가가 부딪히고, 그들은 괴생명체를 마주한다. 그리고 괴생명체와 마주한 선원들은 하나둘씩 열병을 앓으며 죽어간다. <씨 피버>는 괴생명체가 원인불명의 질병을 옮긴다는 장르 클리셰의 무대를 바다로 옮긴 작품이다. 여기에 러브크래프트적인 거대한 심해 괴생명체가 등장하고, 어선에서의 고된 노동에 정신을 놓고 마는 뱃사람들의 ‘바다 열병’을 주된 소재로 가져온다.

 아쉽게도 영화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시본의 붉은 머리가 불행을 의미하는 징크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던가, 잠시 바다에 잠수해 거대 생명체를 목격하는 시본의 모습 등은 작품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주민인 오미드(아르달란 에스마일리)와 수디(엘리 보우아카즈), 배의 실세이자 바이킹의 후손인 프레야(코니 닐슨), 조니의 고모이자 오래된 선원인 시에라(올웬 파우에레) 등 선원들의 캐릭터도 뚜렷하다. 적어도 시본이 배에 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의 모든 선원들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실패한다. 그 원인은 극의 스릴을 담당하는 요소들의 배치가 후반부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선박이 심해 괴생명체와 충돌하는 초반부를 지나 ‘열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 영화는 무탈히 흘러간다. 다만 스릴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등장하자마자 영화는 그것을 등장시키거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한없이 늘어진다. 89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항해하는 배를 풀숏으로 촬영한 인서트가 거의 20여 차례 등장하는데, 이것은 극의 전개를 한없이 지연시킬 뿐 어떠한 역할도 이뤄내지 못한다. 배의 선원들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들어가야 할 인서트 숏은, 역으로 배로부터 관객들을 고립시킨다. 그 결과는 영화의 3막에 해당하는 후반부에서 몰아치는 온갖 갈등과 죽음의 사건들뿐이며, 초반부에 암시된 스릴들은 후반부에서 급하게 흩뿌려진다. 유일하게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현재의 코로나 19 사태와 유사한 상황(자가격리)이 벌어지고, ‘트롤리 딜레마’와 같은 선택이 인물들에게 요구된다는 것 정도일까? 물론 그것조차 등장하기만 할 뿐 제대로 다뤄지지는 못한 채 영화가 마무리된다. 결국 <씨 피버>는 무난함을 지향하는 장르영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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