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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9. 2020

<언더 워터> 윌리엄 유뱅크 2020

 11km 심해에 위치한 해저 시추 시설 케플러 기지에서 대형사고가 난다. 갑작스러운 압력 이상으로 기지 대부분이 붕괴되고, 엔지니어인 노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루시엔 선장(뱅상 카셀), 폴(T.J. 밀러), 에밀리(제시카 헨윅), 스미스(존 갤러거 주니어), 로드리고(아무두 아티) 등 여섯 명만이 생존한다. 기지의 탈출 포드와 잠수정이 모두 고장난 상황에서, 이들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방법은 1.6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로벅 기지로 이동하는 것뿐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선택하고 어두운 심해로 나서지만, 이들이 맞닥뜨리는 것은 난생 처음보는 괴생명체들이다. 

 전작 <더 시그널>을 통해 저예산으로 매력적인 장르 영화를 연출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윌리엄 유뱅크의 신작 <언더 워터>는 심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고를 담아낸다. 특히 노라 일행이 마주치게 되는 대상이 H.P.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 신화의 신 크툴루라는 점에서 나름 주목할만 하다. 이는 단순히 <언더 워터>가 러브크래프트적인 분위기와 숭고에 가까운 공포를 내세운 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윌리엄 유뱅크가 직접 영화에 등장한 괴수의 정체를 크툴루라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러브크래프트의 테마를 따라가는 데 충실하다. 주인공 노라가 양치질하는 장면에서 시작한 영화는 그의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나약함 내지는 초라함을 고백하도록 한다.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 거대하게 느껴지는 사건 앞에서 그저 나약할 뿐이라 고백한다. 그의 내레이션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케슬러 기지는 붕괴한다.

 이후의 생존자들이 모여 심해 다이빙 슈트를 입고 이동하는 장면들은 사실 공간 자체를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다. 고지라 같은 거대한 크기의 크툴루 대신 인간보다 조금 큰 크기의 괴생명체가 슈트에 장착된 일인칭 카메라 시점 화면의 한쪽 구석에 슬쩍 등장한다거나, 생존자들을 따라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있다는 암시를 주는 사운드 등만이 또렷이 분간될 뿐이다. 게다가 노라와 루시엔 정도를 제외하면 캐릭터들의 전사는 제대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노라와 루시엔의 전사마저도 짧은 대화를 통해 드러나거나 사물함 등을 통해 암시되는 정도이다. 윌리엄 유뱅크와 각본가는 어떤 규정된 성격을 지닌 캐릭터를 사용한다기보단, 그냥 인간을 거대한 괴생명체와 대면하는 상황에 던져 놓는다. 이들의 성격은 각자가 그 상황을 마주하는 방식에서, 혹은 각 배우가 전작들을 통해 쌓아온 것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 <언더 워터>라는 영화를 위해 구축된 캐릭터는 아니다. 

 때문에 <언더 워터>는 여섯 생존자가 맞닥뜨리는 불가사의한 공포, 인간의 능력으로는 손쉽게 파악될 수조차 없는 공포를 다루는데 집중한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공포의 대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윌리엄 유뱅크는 이를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 2>부터 가렛 에드워즈의 <고지라>, J.J. 에이브럼스의 <클로버필드> 등에서 성공적이었던 요소들을 <언더 워터>에 끌어온다. 영화 후반부의 노라는 리플리를 조명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크툴루는 <고지라>의 특정 장면을, 거대한 괴생명체를 원경으로 담는 장면이나 격렬하게 흔들이는 일인칭 시점의 화면은 <클로버필드>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이는 ‘크툴루 신화’가 지닌 상상할 수 없을 법한 것을 상상하게 하는 경험을 무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사한 장르 영화들의 요소를 적절히 끌어옴으로써 관객이 기대했을 법한 순간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언더 워터>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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