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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5. 2020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디자이리 아카반 2018

 프롬 파티가 한창이던 날, 카메론(클로이 모레츠)은 콜리(퀸 셰퍼드)와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들킨다. 카메론의 보호자이자 기독교인인 그의 이모는 그를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전환치료소로 보낸다. 그곳은 ‘탈 동성애’에 성공했다 말하는 목사 릭(존 갤러거 주니어)과 그의 누이 리디아(제니퍼 엘)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곳엔 각기 다른 이유로 보내진 아이들이 있고,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도 못한 채 전환치료소에 보내진 카메론은 혼란을 겪는다. 그러던 중 제인(샤샤 레인)과 아담(포레스트 굿럭)과 친해지게 되고, 전환치료소에서의 생활은 계속된다.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한 감독 겸 배우 디자이리 아카반의 두 번째 장편영화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에밀리 M. 댄포스의 동명 소설(한국 번역 제목은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원작으로 한다. 2018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레즈비언이 주인공이며 전환치료소가 배경인 영화라면 자연스레 나타샤 리온이 주연을 맡았던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가 떠오른다. 그 영화 속 주인공 메건도 카메론의 상황과 유사하다. 치어리더인 매건은 다른 여성 치어리더들을 성적인 뉘앙스로 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전환치료소에 보내지지만, 되려 그곳에서 레즈비언 정체성을 확립한다.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는 이 과정을 코미디로 풀어낸다. 반면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다소 진중한 톤을 이어간다. 두 영화 모두 9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고 20세기 초중반에 벌어진 물리적 학대가 등장하진 않지만, 전환치료가 청소년 퀴어에게 가하는 정서적 학대는 명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이 지점을 명확하게 다룬다. 카메론은 리디아에게 자신을 “캠”이라 부르라고 소개하지만, 리디아는 “안 그래도 남성적인 이름인데 더 남성적이게 들린다”며 다른 입소자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 여성 입소자들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성 입소자들에겐 농구할 시간을 주는 것 또한 성역할 구분을 이들에게 주입하는 방식이다. ‘완벽한 하나님’이지만 동성애는 내면의 죄이기에 하나님이 해결할 수 없으며, 오로지 내면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궤변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리디아와 릭은 동성애를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용어 대신 ‘동성에게 끌림(same sex attraction)’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동성애 자체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악 때문에 동성에게 끌리는 내면의 죄를 짓게 된다 설명한다. 이들은 ‘완벽한 하나님’이 어째서 악을 남겨두고 죄를 짓게 하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부모의 애정결핍/과다, 과도한 운동과 운동 부족 등 상반된 이유를 모두 죄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는 당연히 모순이다. 이들은 입소자의 상황을 빙산에 비유하며, 겉으로 드러난 문제 외의 내면의 문제라 생각되는 것을 적어보라고 한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카메론에게 제인과 아담은 위와 같은 모순을 지적해준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던 카메론은 리디아와 릭이 제시하는 모순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잠자리에 들 때마다 콜리와의 시간을 떠올린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입소자가 겪고 있다. 가령, 꾸준히 ‘복음체조’를 이어가는 카메론의 룸메이트 에린(에밀리 스케그스)은 체조 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성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메론과의 첫 만남에서 에린은 다른 입소자를 ‘부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은 리디아와 릭이 강조하는 모순된 ‘내면의 죄’를 통해 억압된다. “자신을 미워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라면, 정서적 학대가 맞잖아요?”라는 카메론의 항변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어처구니없는 모순, 그야말로 잘못된 교육을 직시한다. 


p.s. 몇 가지 눈에 띄는 오역이 있었다. 첫 번째는 ‘부치(butch)’를 ‘선머슴’이라 번역한 것인데, 이는 레즈비언의 부치-팸 관계를 남성 역할-여성 역할로 잘못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는 오역이다. 두 번째는 ‘동성애(homosexuality)’와 ‘동성에게 끌림(same sex attraction)’이 대사를 통해서 명백히 구분되고, 후자는 제인의 대사를 통해 SSA라는 줄임말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용어가 등장한 처음 두 번 이후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동성애를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전환치료소의 입장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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