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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0. 2020

2020-05-20

1.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뭐라 정의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독점 배급하는 모든 콘텐츠? 다른 OTT 서비스에는 없지만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 넷플릭스가 제작과 배급을 모두 맡은 콘텐츠? 물론 전부 다 정답이다. 가령 TNT가 제작하고 방영하는 드라마 <설국열차>는 미국 외 지역에선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며, 미국을 제외하면 방영권을 넷플릭스가 독점하고 있기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딱지를 달고 국내 넷플릭스에 업데이트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나 <디펜더스> 시리즈, 혹은 <아이리시맨>이나 <결혼 이야기>와 같은 층위에 두긴 어렵다. 전자의 기획 및 제작과정엔 넷플릭스가 개입하지 않았고, 후자에는 모든 과정에 넷플릭스가 개입했다. 물론 <디펜더스> 시리즈에는 마블 스튜디오가, <아이리시맨>에는 트라이베카 등의 스튜디오가, <결혼이야기>에는 헤이데이 필름스가 제작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는 넷플릭스와의 협업이지, 이미 완성된 콘텐츠의 배급권을 넷플릭스가 구입하고 배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 <사냥의 시간>을 생각해보자. 빅리틀픽쳐스가 제작하고 (원래대로면) 콘텐츠판다가 해외에 배급했어야 했을 영화이다. 하지만 결국 넷플릭스가 국내외 배급 모두를 맡게 되었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이 과정에 콘텐츠판다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넷플릭스가 배급에만 관여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작년 칸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마티 디옵의 <애틀랜틱스>나 제레미 클라팽의 <내 몸이 사라졌다>를 배급했다. 물론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배급권을 산 것은 두 영화가 영화제를 통해 이미 공개된 이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몸이 사라졌다>의 프랑스 개봉은 현지 배급사인 레조 필름스가 맡았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배급만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과 '제작까지 관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이는 <사랑의 불시착>, <비밀의 숲>, <동백꽃 필 무렵> 등 국내 방송사를 통해 제작되고 방영된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토해 해외에 배급되었다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다른 드라마와 같은 층위에서 다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사전에 넷플릭스를 통한 해외 배급 및 동시 방영 등이 협의되었겠지만, 그렇다고 넷플릭스가 드라마 자체에 대해 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3. 이를 헷갈리는 것은 <로건>이나 <데드풀> 등 엑스맨 유니버스의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를 MCU라 부르는 것만큼 큰 오류다. 물론 같은 마블 코믹스 원작이라고 이 영화들을 <어벤져스>나 <블랙팬서>와 같은 층위에서 다루는 수많은 기사와 블로그, 트윗들이 있다. 그러한 글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짜증을 넷플릭스가 배급만 한 콘텐츠와 제작까지 한 콘텐츠를 구분하지 않는 글들에서도 느낀다. 심지어 그것을 비평이나 어떤 흐름의 중심에 놓는 글도 많다. [필로] 이번호에 실린 <언컷 젬스>에 대한 정성일의 글이 그렇다. 글 전체가 아니라 글의 마지막 보론 부분에 해당한다. 여기서 그는 "<언컷 젬스>는 처음부터 넷플릭스에 접속해서 보는 영화로 전제하고도"라고 말하며 "바보가 아니라면 모니터 화면을 염두에 둔 채 필름 카메라인 아리캠을 들고 뉴욕 맨해튼 47번가에 가서 그렇게 촬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쓰고 있다. 이 말은 거짓이다. <언컷 젬스>는 북미와 유럽의 몇몇 국가를 제외한 국가들에서 넷플릭스가 배급했을 뿐, 북미와 유럽의 몇몇 극장에서는 통상적인 극장 개봉을 거쳤다. 이는 <아이리시맨>이나 <결혼이야기>, <두 교황> 등이 아카데미 출품 자격을 얻기 위해 제한적으로 개봉한 것과도 다르다. <언컷 젬스>는 넷플릭스가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컷 젬스>의 넷플릭스 배급이 영화 제작단계에서 이미 결정된 것 맞지만, 샤프디 형제는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A24에 의한 북미 스크린 개봉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심지어 vpn을 활용해 미국 넷플릭스에 접속해보면 <언컷 젬스>는 올라와있지도 않다. 때문에 이를 위와 같이 말하는 것은 비약에 가깝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언컷 젬스>에 대해 모니터-디지털 관람과 스크린-필름 관람 경험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굳이 이 영화가 아니어도 될 수많은 사례들에서 이 영화를 갑자기 뚝 떼어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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