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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18. 2020

<#살아있다> 조일형 2020

 재난영화는 한국에서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장르 중 하나다. 개중엔 <괴물>이나 <해운대>처럼 천만을 넘긴 작품도 있고, 유독가스, 원전 폭발, 고층건물 화재, 기생충, 전염병, 터널 붕괴, 화산 폭발 등 소재도 제각각이다. 어떻게 보면 ‘지진영화’나 ‘화재영화’처럼 특정한 상황의 재난을 다루지 않는 이상, 재난영화라는 장르는 좀처럼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하지만 ‘좀비 재난영화’라는 장르로 한정해보자. 최초의 좀비 영화들은 재난영화라기보단 미신적인 것, 혹은 순식간에 타자가 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공포를 다룬 호러영화였다. <28일 후>나 <새벽의 저주> 이후 어느 정도 스케일을 갖추게 된 좀비 장르는 본격적인 재난의 모습을 보여준다. <워킹 데드>나 <월드 워 Z>, <부산행>과 같은 블록버스터들에 이르러 좀비 장르는 호러보단 재난영화에 가까운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재난으로서의 좀비는 초기 좀비영화가 담고 있는 식민주의나 자본주의 비판과 같은 담론을 포기한다. 좀비는 재난의 영역으로 삽입되며 <워킹 데드>에서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지거나, <킹덤>이나 <월드 워 Z>처럼 민중이나 대중이라는 불특정한 집단을 호명하는 소재로 다뤄지게 된다.

 <#살아있다>는 분명 전자의 상황,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의 좀비 재난을 그린다. 늦잠에서 깨어나자 좀비 아포칼립스를 맞이한 게임방송 BJ 준우(유아인)는 당황스러워한다. 여행을 떠난 가족들은 “살아남아라”라는 문자 메시지 하나 만을 남기고 연락이 끊겼으며, 어느 순간 인터넷이 끊긴다. 물론 수도와 전기 또한 차례로 끊긴다. 음식도 물도 떨어진 준우는 자신이 하던 게임에서 무기를 파밍하듯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던 중 아파트 건너편 집에서 쏘아진 레이저 포인터를 발견한다. 아파트의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과 준우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생존을 위해 협력하기 시작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서로를 이어주는 것은 인터넷이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수업하고, 회의하고, 대화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코로나19 이전을 추억하고, 각자의 방에서 술자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 준우와 유빈이 서로의 존재를 처음 확인하는 베란다의 창은 그러한 만남을 가능케하는 창이다. 영화는 인터넷을 제거함으로써 준우를 완벽히 고립시킨 뒤, 창에서 창으로 건너오는 광선을 통해 준우와 유빈을 잇는다. 준우는 그것에 화답하듯 드론을 이용해 유빈의 창과 자신의 창 사이에 줄을 놓는다. 창, 광선, 줄, 두 사람은 이제 액정과 액정을 잇는 가상의 선들로 구성된 네트워크 대신 베란다의 창과 레이저 포인터의 광선, 두 베란다 사이에 음식을 나를 수 있는 줄로 연결된다. 나 이외의 만인이 모두 좀비가 된 상황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 협력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영화 초반부, 침대에서 일어난 준우가 플레이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구현한 게임에서, 준우는 함께 게임하는 게이머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 상황은 좀비 아포칼립스를 맞이한 준우의 상황으로 곧장 이어진다. 나 이외의 모두가 적인 상황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아 협력하는 것, <#살아있다>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이 상황을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담아내려 한다. 액션 시퀀스에서 준우나 유빈, 또는 좀비의 짧은 시점 숏이라던가, 영화 초반부 좀비로 변하는 준우 옆집 남자의 모션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등이 인상적이다. 종종 <R.E.C.>처럼 호러에 집중한 좀비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순간 또한 등장한다. 물론 <부산행>부터 <킹덤>까지 여러 편의 한국 좀비 영화 및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며, 한국 콘텐츠 속 좀비의 외형과 움직임이 획일화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사실 이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언급한 두 작품의 분장팀이 <#살아있다>에도 참여했기 때문이다. 대신 <#살아있다>는, 마치 <부산행>이 KTX라는 공간을 이용한 것처럼 복도형 아파트 공간을 활용한다. 좁은 곳에서 음식과 이런저런 도구를 ‘파밍’하기 위해 움직이는 준우의 모습은 충분한 긴장감을 준다. 또한 아파트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좀비들의 스케일 또한 ‘좀비 재난영화’에서 기대했을 법한 비주얼을 선사한다. 결국 <#살아있다>는 코로나19로 인한, 모든 사람이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서의 당혹스러움과, 그것을 해치고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살아있다>를 통해 그러한 당혹스러움에 공감하고, 동참하고 싶다면 영화를 관람하길 바란다.


*  리뷰는 원고료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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