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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20. 2020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댄 스캔런 2020

 "오래전,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했어. … 시간이 지나면서 마법은 사라져갔어."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엘프, 요정, 인어, 켄타우로스, 키클롭스 등이 존재하는 마법세계이지만, 습득이 어려운 마법 대신 과학이 발달하며 마법이 사라진 세계를 다루고 있다. 엘프 형제인 이안(톰 홀랜드)과 발리(크리스 프랫)가 단 하루 동안 아버지를 되살릴 수 있는 마법을 통해 죽은 아버지와 만나려 하지만, 어떤 실수로 인해 아버지의 하반신만 돌아오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은 언뜻 광대해 보이지만, 비둘기 대신 유니콘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고, 비행기와 자동차에 익숙해진 요정과 켄타우로스는 각각 나는 법과 달리는 법을 잊어버린 세계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쉽게도 <온워드>는 실망스러운 픽사의 최근 행보를 이어간다. <온워드>는 <인사이드 아웃> 이후의 모든 픽사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소심한 작품이다. 광대하게 펼쳐 놓은 듯한 세계관은 몇몇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요소로 허비되고 만다. 가령, 다양한 종족이 등장한다는 설정은 결국 가장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지닌 엘프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힘을 잃고, 다른 종족의 특징들은 개별 에피소드를 위한 세팅 이상을 소화하지 못한다. 가령, 요정은 카체이싱을 위해, 맨티코어(옥타비아 스펜서)는 상황설명을 위해 등장한다. 이들은 두 엘프의 여정을 방해하거나 도와주는 한에서만 등장할 뿐, 언뜻 복잡해 보이는 세계관의 단면을 보여준다거나 주목할만한 조연 캐릭터로 기능하지도 못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브라이트>처럼, <온워드>의 세계는 LA의 주민들을 판타지 속 여러 종족들로 단순히 치환한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마법과 관련한 장면들도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온워드>의 공간들은 거의 아무것도 없던 <굿 다이노>의 공허한 공룡시대나 <도리를 찾아서>의 밀폐된 아쿠아리움과 유사하다. <월-E>의 우주, <업>의 드넓은 하늘과 대지,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 시점에서 본 기괴하면서도 포근한 집, 각기 다른 차원을 담은 <몬스터 주식회사>의 문과 같은 이미지는 <온워드>에 없다. 영화의 이미지는 도리어 최근의 디즈니 실사영화들이 애니메이션의 풍성한 이미지를 CG로 옮기면서 빈약해진 것과 같은 모습을 띤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저주’의 등장이 특히 그러하다. 어딘가 거대한 위협처럼 느껴졌어야 할 저주는 위협이라기보단 이미 제시된 약점에 따라 정리될 아주 낮은 허들처럼 느껴질 뿐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안의 이야기 또한 진부할 뿐이다. 영화 속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이안이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마법 지팡이를 사용해 마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마법이 사라진 마법 세계의 지도 절반 가까이를 횡단하며 벌어지는 <온워드>의 이야기는 대디 이슈를 다루는 수많은 이야기와 별다른 차별점을 갖지 못한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 또한 진부한 가족주의와 아버지를 대체하는 또 다른 남성의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코코>와 <온워드>의 차이점은, 전자가 가짜 아버지를 벗어나 진짜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라면, 후자는 진짜 아버지의 부재를 대체 아버지를 통해 극복한다는 것뿐이다. 

 이것의 진부함은 영화의 캐스팅과도 연결된다. <온워드>의 소심함 또한 여기에서 연유하기도 한다. 영화의 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톰 홀랜드와 크리스 프랫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MCU에서 스파이더맨과 스타로드로 활약하고 있다. 이안과 발리는 두 사람의 기존 캐릭터에서 꽤나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이안은 MCU의 스파이더맨처럼 대디 이슈를 가지고 있고, 발리는 하위문화라 불릴 것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스타로드와 유사하다. 영화의 이미지를 가리고 두 캐릭터의 대사만 듣는다고 생각했을 때, 종종 MCU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스타 캐스팅은 기존 픽사 영화의 전략이 아니다. 물론 픽사의 시작을 알린 <토이 스토리>의 톰 행크스가 있긴 하다. 하지만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끌어온다거나, 다른 출연진과의 전작, 혹은 영화 밖 관계를 고려한 캐스팅이 아니다. 반면 <온워드>의 캐스팅이 공략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심지어 두 캐릭터의 디자인과 두 배우의 외형적 특징도 유사하다. 영화는 두 배우의 전작 속 캐릭터를 끌어와, 이번 영화에서 재활용한다. 

 때문에 <온워드>는 그동안 픽사 최악의 작품으로 거론되던 <카> 시리즈나 <굿 다이노>보다 지루하게 다가온다. 세계는 새롭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캐릭터는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예상했던 바를 벗어나지 않는다. 대디 이슈라는 소재를 새롭게 풀어내지도 못한다. <토이 스토리>에서 <처키>를, <월-E>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인용하는 등의 재치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의 한심한 인용으로 추락한다. 작년 <토이 스토리 4>가 개봉했을 때 즈음 공개된 예고편을 봤을 때 예상했던 단점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온워드>는 외면적으로 오랜만에 제작된 속편이 아닌 픽사의 신작이지만, 위의 요소들로 인해 팍사 내지는 범-디즈니 영화의 실패한 속편처럼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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