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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26. 2020

2020-06-26

1. 종강했다!


2. 종강하기 전에도 극장에서 세 편의 영화를 봤다. <온워드>는 픽사의 가장 소심한 작품이었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은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보다 훨씬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후자를 먼저 관람했고 그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감상이 많이 뭉개져버려 아쉬웠다.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었던 미래와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숏에서의 보았던 작별로의 귀결 사이의 차이 때문일까. 혹은 바르다의 죽음이라는 사태가 후자에 대한 나의 관람 태도를 이미 정해버렸기 때문에 전자의 흥미로움이 온전히 오지 않은 것일까. 


3. 나머지 한 편은 <#살아있다>인데, 영화는 썩 재밌진 않았지만 흥미로운 구석은 많았다. 영화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오메가 맨>, <28주 후>, <부산행>, <월드 워 Z>, <워킹데드>, <아이 엠 어 히어로>에 등장하는 좀비의 특징과 몇몇 상황들을 흩뿌려두고, <엑시트>와 유사하지만 조금 더 어두운 톤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짜파구리'를 등장시켜주는 것도 잊지 않는 트렌디한(?) 작품이다. 자잘한 설정붕괴들이 흥을 깨긴 하지만, 좀비로 변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쫓는 카메라라던가, 초반의 난장판을 묘사하는 장면은 나름 인상적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유아인이 연기한 주인공 준우는 게임방송을 켜고 [배틀그라운드]에 접속한다. 일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진행한 강좌에서 손희정 평론가는 <워킹데드>와 같은 좀비 장르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언급했는데, <#살아있다>는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준우의 상황을 암시한다. 그의 생존 방법도 유사하다. 마지막까지 집 안에서 '존버'하면서 버티고, 식량이 떨어지면 좀비를 피해 옆집으로 넘어가 음식과 도구들을 '파밍'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컨셉은 두 주인공이 대면하는 방식이다. 인터넷이 끊김으로써 (전기도 끊기긴 하는데 핸드폰은 언제나 충전되어 있다) 전자기기의 스크린을 통한 대면이 불가능해진 준우와 유빈은 베란다 창문을 열고 대면한다. 이들의 첫 대면은 준우의 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유빈이 쏜 레이저 포인터의 불빛이다. 여기서 두 사람의 베란다 창문을 스크린이라 생각한다면, 이들은 결국 스크린을 통해 대면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 좀비들은 소리에 예민하기에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두 공간에서 소리를 통해 대화한다면 좀비들이 들이닥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 사람의 대면은 물리적이지만, 이들은 결국 아이패드 스크린을 통해 필담을 나누거나, 준우가 우연히 구한 무전기를 통해 대화한다. 게다가 두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엑시트>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등장했던) 드론이다. 다만 <엑시트>의 드론은 피사체-카메라-스크린-관람자의 매커니즘을 통해 두 주인공과 타인을 연결했다면, <#살아있다>의 드론은 단순히 스크린(창문)과 스크린 사이를 물리적으로 연결(줄을 잇는 것)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여기서의 드론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의 같은 구도로 VR 기기를 착용하는 것을 보여줬을 때의 패기와는 달리, 카메라-스크린의 기능이 아닌 물리적 매개체의 기능만 수행한다. 결국 <#살아있다>가 강조하는 것은 비대면의 상황이다. 물론 2019년 말에 촬영된 영화가 코로나19 판데믹을 예견했을리는 없지만, 절묘하게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맞다. 때문에 스크린으로 비유되는 '창문'을 통해 비대면의 상황을 구성하는 것은 나름의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다면 영화가 스스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을 무화시키는 종반부 군인의 등장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엔딩과 같은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그 직전에 등장하는 (<워킹데드>에서 따온 것이 거의 분명한) 어떤 상황은 비대면이라는 주제를 놓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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