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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07. 2020

<디스클로저> 샘 페더 2020

 작년 국내에 공개된 <우먼 인 할리우드>가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젠더 연구소의 연구결과와 통계를 바탕으로 영화와 TV쇼 등에서의 여성 재현의 문제를 다뤘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는 트랜스젠더 배우, 감독, 제작자, 각본가 등의 경험을 토대로 미디어 속 트랜스젠더 재현의 문제를 다룬다. 레번 콕스, 젠 리차드, 채즈 보노, 캔디스 케인, 재즈문, MJ 로드리게즈, 제이미 클레이튼처럼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센스8>, <테일 오브 더 시티>, <포즈> 등의 퀴어 드라마에서 활약해온 배우들과 여러 TV쇼 및 영화에서 오랜 세월 다양한 역할로 출연해온 트랜스젠더 배우들이 출연한다. <매트릭스>와 <센스8>의 릴리 워쇼스키 감독 또한 인터뷰이로 출연한다.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와 인터뷰이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TV와 영화 속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의 재현을 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과 동시에 그러한 미디어가 보여주는 트랜스포빅한 시선 또한 마주해야 했던 경험은 ‘재현’의 이중적 역할을 드러낸다. 시스젠더가 그러한 것처럼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의 실제 수가 비슷함에도, 미디어에서 트랜스여성이 주로 재현되는 것을 여성의 상품화 및 여성혐오와 연관된다. 인종 커뮤니티에 속한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이중의 차별, 그리고 이민자 및 인종 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강조되는 남성성과 여성혐오의 문제는 트랜스젠더/크로스드레서를 등장시키고, 남성성의 거세만을 여러 코미디 영화 속 재현에 대한 언급 또한 등장한다. 또한 수많은 치정극/멜로드라마나 캐릭터가 알고 보니 다른 성별이었음을 ‘반전’으로 사용하거나, 범죄극에서 희생자로만 언급되는 문제 등 또한 주요하게 다뤄진다. 에디 레드메인, 자레드 레토 등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했지만, 결국 영화 밖에서는 시스젠더의 삶으로 복귀하는 시스젠더 배우들의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진다. 

수잔 스트라이커(좌), <베툴리아의 유디트>(우)

 <디스클로저>에 등장하는 수많은 논의 중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초기영화 속 트랜스젠더의 재현이다. [트랜스젠더의 역사]의 저자인 수잔 스트라이커는 영화 속 인터뷰에서 DW 그리피스의 <베툴리아의 유디트> 속 한 장면을 언급한다. 영화에서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장면에서, 유디트의 영웅적 행동이 진행되는 와중에 사건 장소 주변을 돌아다니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스트라이커는 이 인물이 “마치 거세를 한 내시처럼 성기를 자른, 트랜스젠더 혹은 성별이 불분명한 인물”이라 언급하며, 영화사에서 최초로 서사의 진행을 위해 컷이 활용된 장면에서 이를 주도한 것이 이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 장면을 근거로 “마치 트랜스와 영화가 함께 성장한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덧붙인다. <디스클로저>에서 <베툴리아의 유디트>가 언급되기 전, 초기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는 크로스드레서의 모습으로, 여성적 몸짓이나 의상을 희화화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레번 콕스의 말과 함께 1910년 이전에 제작된 여러 영화의 클립들이 등장한다. 

촬영장의 알리스 기

 초기영화사를 이끌었으며 극영화를 연출했던 최초의 감독 중 한 명인 알리스 기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자연스럽게: 알리스 기-블라쉐의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에 초기영화와 유튜브 초기에 업로드된 영상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언급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열차의 도착>은 물론 <정원사>, <벽의 해체>, <아기의 식사>와 같은 뤼미에르 형제의 초기 영화들은 유튜브나 SNS 속 짧은 영상들과 유사하게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낸다. 알리스 기의 기록영화 <스페인>이나, 일종의 댄스영화이자 채색영화인 <피에로의 구애 댄스>, <페미니즘의 결과>나 <소시지를 위한 경주>와 같은 극영화 등 극히 짧은 러닝타임(1~10분)의 영화들은 지금의 유튜브 초기의 홈비디오를 넘어, 틱톡, 인스타그램이 만들어낸 미디어환경 속 영상들과 내용의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초기영화와 지금의 미디어환경이 보여주는 내용은 무빙-이미지로 재현할 수 있는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담아내는 것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MJ 로드리게즈, 로번 콕스, 캔디스 케인

 초기영화에 대한 레번 콕스의 인터뷰와 함께 등장한 영화 클립들을 살펴보자. <올드 메이드 해빙 허 픽쳐 테이큰>(1901)에선 장신의 남성 배우가 여성 의복을 입고 ‘여성적 몸짓’을 선보이며 거울을 바라보다가, 벽에 붙은 사진이 떨어지자 화들짝 놀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미트 미 앳 더 파운틴>(1904)에선 크로스드레서/트랜스젠더의 모습 자체를 기괴한 형상으로 묘사한다. 이 당시 크로스드레싱은 혐오의 대상일 뿐 아니라 법적인 처벌 대상이었다. 초기영화는 트랜스젠더/크로스드레서들을 처벌 대상으로, 혐오와 놀림감의 대상으로 재현한다. <디스클로저>의 인터뷰이들은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을 비롯한 여러 영화들에서 ‘블랙페이스’ 분장을 한 백인 배우들이 흑인으로 출연한 것과 이를 연관짓는다. 단순히 재현하는 것과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에 있어 특정한 관점을 부여하는 것은 큰 차이를 지닌다. 물론 뤼미에르의 최초의 영화가 왜 기차와 공장의 노동자들이었는지를 논의할 수 있겠지만, 위의 언급한 사례들과 같은 서사적 재현에서 카메라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연출자-카메라맨의 관점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기영화들의 무차별적인 재현 속에서 알리스 기의 영화들은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거나, <A Man’s a Man>처럼 배우 전원을 흑인으로 캐스팅하는 등의 시도를 이어갔다. 반면 그리피스는 KKK단의 탄생을 묘사하기 위해 ‘블랙페이스’ 분장을 도입하고, 크로스드레서/트랜스젠더를 재현하는 여러 영화들은 크로스드레싱과 여성성을 놀림거리로써 재현했다. 

얀스 포드

 이러한 재현의 문제는 당연하게도 영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디스클로저>는 초기영화부터2010년대까지 제작된 수많은 영화와 TV쇼에서의 트랜스젠더 재현을 언급한다. 트랜스젠더는 희화화된 모습, 혹은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다뤄진다. 이들의 재현은 혐오와 차별의 시각에 근거한다. 동시에, 첫 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디스클로저>의 인터뷰이들은 자신이 본 미디어 속 트랜스젠더의 재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다고 증언한다. 이 지점에서 재현의 역사는 존재의 역사로 다시 서술될 필요가 있다. 초기영화의 무차별적인 재현은 재현 대상의 존재를 천명하는 일이었다.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존재를 재현한다. 때문에 초기영화 속 트랜스젠더/크로스드레서의 재현은 곧 이들의 존재를 재현하는 것이다. 100년 전 퀴어들의 존재는 대부분 혐오범죄나 동성애나 크로스드레싱 등의 행위에 대한 처벌과 연관된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재현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존재함을 기록한다. <디스클로저>의 인터뷰이들은 그러한 재현-존재의 논리를 체현하고 있다. 스크린에 재현된 트랜스젠더의 모습은, 비록 혐오적 시선의 카메라를 통한 재현일지라도, 트랜스젠더들에게 거울 속 타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 속 재현의 역사를 존재의 역사로 다시 쓰는 과정은 재현대상에 대한 혐오, 차별, 조롱과 비가시화된 존재자의 가시화라는 두 지점 사이에서 진동한다. 오픈리 게이이자 영화평론가인 로빈 우드는 [살기를 띤 게이들: 히치콕의 동성애 혐오증]이라는 글을 통해, 히치콕이 유명한 여성혐오자이자 동성애혐오자였음에도 게이 배우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로프>나 <열차 안의 낯선 자들>과 같은 그의 영화 속에서 동성애적 욕망의 가시화와 동성애혐오증 사이의 진동을 목격할 수 있다고 서술한다. 이어 그는 청소년기에 <로프>를 관람한 경험이 자신과 같은 정체성의 인물을 스크린에서 처음 목격한 사건이었으며, 자신은 극 중 악인으로 묘사되는 두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로빈 우드의 진술은 <디스클로저>에 출연한 거의 모든 인터뷰이의 진술과 겹친다.

산드라 콜드웰

 영화의 재현은 존재를 재현한다. 초기영화의 무차별적인 재현은 당시의 시선으로 대상을 재현한다. 그것은 존재의 재현과 혐오적 재현 사이의 진동을 야기한다. 엄밀하게 정의되지도, 가시화되지도 못했던 존재자들은 두 계열의 재현 사이의 진동을 통해 존재가 드러난다. 초기영화가 행했던 무차별적인 재현은 지금도 이어진다. 영화에서, TV에서, 유튜브에서, 인스타그램에서, 틱톡에서, 카메라 앞의 모든 것은 재현대상이며, 카메라 앞에 없는 것마저 재현대상이다. 무차별적 재현의 범위는 무한에 가까이 팽창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재현하느냐에서 무엇을 어떻게 재현하느냐로 옮겨졌다. <디스클로저> 속 인터뷰이들은 ‘어떻게’의 사례들을 쌓아 나가는 사람들이다. <오렌지 이즈 뉴 블랙>, <센스8>, <판타스틱 우먼>, <포즈>, <테일 오브 시티> 등은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트랜스젠더 배우가 연기하도록 하고, 트랜스젠더 배우는 작품 안과 밖에서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재현한다. 2017년, 오랜 기간 배우로 활동했던 산드라 콜드웰이 커밍아웃할 수 있었던 것에는 <디스클로저>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다른 배우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재현하는 작품에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존재의 재현과 혐오적 재현 사이의 진동 사이에서, 이들은 진동 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재현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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