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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1. 2020

정상의 풍경 밖으로: <아워 바디>


*씨네21 영화평론상 작품비평 부분에 냈다가 낙선된 글.


 강압적인 방식으로 훈육되는 스파르타의 남성 시민부터 걸음걸이를 통제하고 체조를 통해 만들어지는 일본의 근대적 신체, 징병제를 통해 완성되는 한국 남성의 신체까지, 정상성이라는 기표를 통해 신체를 훈육하는 것은 하나의 역사를 구성한다. 다만 이 역사의 과정은 남성의 신체와 더욱 큰 연관을 지닌다. 스파르타, 20세기 일본, 한국 군사정권은 유사한 방식으로 여성의 신체를 보편적 신체에서 제외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여성의 신체는 성규범과 재생산의 영역에 구속된다. 하지만 <아워 바디> 속 자영의 신체는 신체를 통제함으로써 성립되는 국가적, 사회적 규율 밖으로 탈출함과 동시에 여성의 신체에 부여된 성규범의 구속을 벗어난다.


 <아워 바디>는 특정한 풍경을 조망하도록 억압되는 시선을 통해 통제되는 현대 한국 여성의 신체에 대한 영화다. 8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자영의 시선은, 수험생활을 위해 마련된 자취방의 풍경을 향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필기가 빼곡한 문제집, 인터넷강의, 벽에 붙은 메모지 등을 바라보는, 안경을 벗어 던진 자영의 퀭한 눈을 제시한다. 자영의 엄마는 식사자리 때마다 자영이 다시 시험을 준비할 것을, 그것을 통해 사람구실을 할 것을 요구한다. 자영의 학창시절 친구이자 직장인이며 이제 막 신혼생활을 시작한 민지는 자신의 회사에서 사무 아르바이트를 할 것을, 더 나아가 인턴에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자영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그에게 시험, 면접, 결혼이라는 일상적이며 정상적인 풍경만을 제시한다.


 자영의 눈앞에 놓인 풍경을 뒤바꾸는 것은 달리는 현주의 신체다. 자영은 자신의 자취방이 위치한 동네의 어느 계단에서 달리는 현주를 마주친다. 자영은 자신이 놓친 맥주캔을 주워 주는 현주의 몸을 훑는다.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을 통해 단련된, 이상적이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신체. 자영은 이내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곳은 초등학교다. 그는 학습의 공간에서, 달리는 방법을 강의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학습의 풍경을 보고 있다. 그가 자취방에 돌아와 마주하는, 메이크업 강의 영상을 보며 화장하는 동생 화영의 모습 또한 학습의 풍경 안에 메여 있다. 그가 그 풍경을 벗어나는 것은 다시금 마주친 현주를 따라가는 것, 그리고 현주가 소개해준 달리기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여기서 그의 시선은 앞서 달리는 현주의 뒷모습을 쫓는다. 이를 통해 자영의 신체는 변화한다. 달리기와 홈 트레이닝을 시작한 그의 몸은 이상적이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현주의 신체와 닮아간다.


 현주와 친밀해진 자영은 현주의 집에 종종 놀러 간다. 그 집에 1년 이상 살았음에도 막 이사한 것처럼 썰렁해 보이는 현주의 집에서 자영은 현주가 담근 술을 나눠 마시고, 서로의 섹스 판타지를 공유하고, 덥다며 옷을 벗고 스포츠 언더웨어만 입은 현주의 몸을 관찰한다. 현주는 자신의 누드를 담은 사진을 자랑스레 자영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현주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는 순간 자영은 잠들고 이를 듣지 못한다. 이 장면 이후 자영이 목격하는 것은 현주의 좌절이다. 자영은 우연히 어느 카페에서 거절당하는 현주를 본다. 그 이후 며칠간 현주는 달리기 모임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나타난 현주는 이번엔 자영의 뒤에서 뛰겠다고 한다. 자영은 어느새 자신을 앞지른 현주를 쫓아간다. 어두운 길목에서 잠시 멈춰선 현주, “현주야”라고 그를 부르는 자영, 오묘한 표정을 지은 뒤 다시 달리는 자영, 그리고 자영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정확히 러닝타임의 절반에서 현주는 죽는다.


 자연스레 히치콕의 <현기증>이 떠오른다. 듀나가 말한 것처럼, <아워 바디>는 <현기증>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오지 않는 귀신 이야기”이다.[1] <현기증>에서 매들린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묶은 머리는 그것을 바라보는 스코티의 시선을 통해 모종의 섹슈얼리티를 부여받는다. <아워 바디>의 자영은 달리는 행위에 따라 흔들리는 자영의 묶은 머리를 바라본다. 여기서 현주에 대한 자영의 성적인 감정은 발생하지 않는다. 현주는 자영에게 섹슈얼리티의 대상이 아니다. 현주의 죽음 이후 어두운 자취방에 누워 있는 자영 앞에 전라의 현주가 나타난다. 자영은 손으로 현주의 몸을 훑고, 카메라는 그러한 자영의 손과 시선을 따라간다. 현주의 죽음 이후 관객들이 현주의 몸을 바라보는 자영의 시선에서 느껴졌을 법한 성적 긴장감은 완전히 빗나간다. 자영은 이성애자 여성이다. 그가 현주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의 다리를 ‘젓가락’이라 말하는 동생 화영의 다리를 볼 때의 시선에 가깝다. 즉, 자영이 다른 여성의 신체를 훑는 시선은 성적이기보단 동경, 혹은 모방의 대상을 탐색하는 시선에 가깝다.


 때문에 자영이 현주의 죽음 이후 경험하는 두 번의 섹스는 현주가 말했던 것의 모방이다. 달리기 동호회에서 알게 된 동생과의 섹스는 “어린 애들은 맨날 자기 몸만 자랑하잖아. 여기저기 만져보라 그러고”라는 말을, 민지가 소개해준 회사에서 인턴 면접을 보기 직전 부장과의 섹스는 “서른 살 많은 남자랑 자면 어떨 것 같아?”라는 말을 재현한다. 자영은 현주를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 현주의 성적 판타지를 모방한다. 전자의 경우엔 자영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엔 오해를 낳는다. 전자가 또래 사이의 ‘정상적인’ 성생활이라는 맥락에 포섭된다면, 후자는 ‘정상성’의 맥락 안에서 튕겨 나간다. 부장과의 섹스는 정상에서 벗어난 풍경을 목격한 민지에 의해 오해되고, 자영의 해명은 제대로 시도되지도 못한다. 매들린의 소용돌이 모양 머리가 섹슈얼리티가 부여됨과 함께 스코티의 혼란스러운 여정을 암시한다면, 현주의 사방으로 흩날리는 머리는 정상에서 탈주하는 자영의 탈규율적 여정을 암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가족과의 식사에서 자영의 엄마는 “좀만 더 했으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을텐데”라며 행정고시 준비를 이어갈 것을 요구한다. 가족과 헤어진 자영은 홀로 고급 호텔의 고층에 있는 스위트룸으로 향한다. 카메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승하는 자영의 시선을 따라 도시 전경을 담고, 자영의 눈동자에 비친 도시의 풍경을 담는다. 자영은 현주에게 말했던 자신의 섹스 판타지를 실행에 옮긴다. 값비싼 호텔의 넓은 방에서 룸서비스를 시켜 먹고, 넓은 소파에 누워 자위한다. 영화는 넓은 방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는 자영의 얼굴을 보여주며 끝난다. 자영이 하늘을 보는 것은 초등학교에서 처음 달리기를 시도했을 때와 영화의 마지막 두 숏뿐이다.


 합격을 쫓는 시험과 면접의 풍경에서 현주의 흩날리는 머리를 쫓는 달리기의 풍경으로 옮겨온 자영의 시선은 일상과 정상의 풍경에서 삭제된 풍경을 향한다. 현주가 죽기 전, 현주는 운동을 통해 변화한 자신의 몸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지만, 자영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을 직접 본다. 이는 자영의 눈 또는 영상으로만 남는 현주의 신체와 자신의 몸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는 자영의 신체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전자를 ‘볼 수 있’을 뿐인 귀신의 신체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제 신체로 구분된다. 현주라는 귀신의 풍경을 통해 달리며 처음 하늘을 보았던 자영은 현주라는 귀신의 신체를 경유해 도착한 자신의 판타지에서 다시금 하늘을 본다. 그는 자신 앞에 제시된 정상의 풍경, 끝없는 시험과 성규범이라는 풍경을 통해 훈육되는 한국 여성의 신체에서 탈주한다. 그 종착지는 규범적인 것도 귀신의 것도 아닌 자신의 판타지이며, 오로지 자신이 지닌 신체를 통해 실천되는 판타지이다. <아워 바디>의 대범함이 여기에 있다. 규범 혹은 규율로써 강요된 정상의 풍경에서 자신의 신체로 시선을 돌리고, 신체를 둘러싼 풍경의 모순을 가로질러 자신에게로 탈주하는 것.


[1] " 영화 리뷰 - 아워 바디 (2018)," 듀나의 영화 낙서판, n.d. 수정, 2020 5 18 접속, http://www.djuna.kr/xe/index.php?mid=review&search_keyword=%EC%95%84%EC%9B%8C+%EB%B0%94%EB%94%94&search_target=title_content&document_srl=1351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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