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4. 2020

<스왈로우>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2019

*스포일러 포함


 헌터(헤일리 베넷)는 부유한 상류층 남성 리치(오스틴 스토웰)와 결혼했다. 리치의 부모님이 마련해준 저택에서 살며, 리치가 출근해 일하는 동안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며 핸드폰 게임을 즐겨 하던 헌터는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과 함께 묘한 불안을 느끼는 헌터는 충동적으로 유리구슬, 압정, 건전지 등 작은 잡동사니들을 삼키게 된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던 중 이 사실이 밝혀지고, 헌터는 정신과에서 이식증 판정을 받는다. 리치와 그의 부모님은 간병인 겸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헌터를 감시하고, 헌터가 자신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가족에게서 버려질 것이라는 암시를 계속 이어나간다. <스왈로우>는 <하드코어 헨리>, <걸 온 더 트레인> 등 주로 장르영화 영역에서 활동해온 헤일리 베넷이 주연과 제작을 겸한 작품이다.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의 첫 장편 극영화 연출작이며,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 또한 제작에 참여했다. 

 <스왈로우>는 임신 중단을 이야기한다. 헌터와 리치 및 리치의 가족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고 작동하는 출발점은 두 사람의 결혼이지만, 헌터의 임신은 다른 어떤 사건보다 그를 관계의 그물망 속에 가두어 버린다. 임신은 헌터의 행동을 제약하고, 그의 존재 이유가 오로지 출산인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으로 그를 몰아간다. 아니, 임신보다는 임신에 대한 리치와 리치의 부모의 반응이 헌터를 그러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즉, 헌터의 임신은 헌터와 리치 사이의 행복과 애정에 대한 사건이 아니라, 리치와 그의 부모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사건으로 다뤄진다. 헌터는 영화 초반부에 묘사된 새 집에서의 지루한 결혼생활을 통해 이를 이미 깨닫고 있다. 남편은 출근하고, 외딴 교외에 위치한 집에 홀로 머무르는 헌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곤 커튼의 색깔을 고르는 것 정도일 뿐이다. 

 영화 후반부, 리치와 그의 부모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헌터는 탈출한다. 그 과정에서 리치의 부모가 고용한 가사도우미 루아이(레이스 너클리)의 도움을 받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헌터가 리치의 가족과 맺는 관계보다 더욱 풍성하고 직관적이다. 중동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루아이는 전쟁을 겪은 인물이다. 루아이는 헌터의 이식증에 대해 “전쟁 중에는 그러한 (정신적인) 병에 걸릴 틈이 없다”고 말한다. 헌터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다. 이후 헌터는 극심한 불안을 겪다가 침대 밑으로 숨는다. 루아이는 헌터 옆으로 다가와 그를 위로한다. 이렇게 쌓여가는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물론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손쉽게 연관시키는 것 같다는 인상이 있지만) 헌터가 놓인 상황이 전쟁과 다름없음이 드러난다. 즉, 임신이라는 상태는 마치 전쟁처럼 헌터의 몸의 안위를 자신의 통제 안에 넣을 수 없는 상태이다. 때문에 헌터가 자신에게 가해진 공간적 압박을 피해 탈출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루아이가 돕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연대와 공감의 행동이다.

 탈출한 헌터의 여정은 임신 중단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모텔 화단에서 주워 온 흙을 먹던 헌터는 어느 순간 흙들을 모두 게워낸다. 그의 이식증이 자신의 임신과 그것을 둘러싼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서 발현된 것이었기에,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의 몸과 관련된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이물질을 먹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헌터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가 그와 관련된 상황을 자신이 통제한다고 큰 소리로 외칠 때의 강렬함은 마침내 자신의 몸과 관련된 통제권이 자신에게 왔음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삼키는 음식이 아닌 것은 임신중절약이다. 어느 몰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과 함께 약을 먹은 헌터는 화장실에 들른 뒤 어딘가로 떠난다. 카메라는 헌터가 떠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좁은 화장실 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두가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친구들과 몰에 놀러왔을지도,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몰을 찾은 것일지도, 누군가는 헌터와 같은 상황에 놓여 화장실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리치와 살던 집에서 헌터는 자신이 삼킨 잡동사니들이 대변과 함께 배설되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몸에서 자신의 몸이 아닌 것, 몸 안에 들어있지만 몸은 아닌 것, 그 애매한 경계선에 놓인 것들의 경계를 자신이 확정할 수 있다는 것. 헌터가 자신의 몸을 되찾는 것은 곧 자신의 몸인 것과 몸이 아닌 것을 스스로 구분하는 일이다. 때문에 화장실을 찾는 수많은 여성들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숏은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숏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제이 로치 20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