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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6. 2020

<반도> 연상호 2020

 <부산행>에서 묘사된 좀비 사태가 발발한 날, 육군 대위 정석(강동원)은 가까스로 홍콩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나와 조카는 감염자에게 당해 사망한다. 북한이라는 지리적 장벽으로 인해 좀비 사태는 한반도 중 남한에만 국한된 사건이 되었다. 4년의 시간이 흐르고, 정석은 홍콩의 범죄조직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며 반도에 버려진 2000만 달러를 가져올 것을 의뢰받는다. 인천항을 통해 반도에 들어와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돈을 발견하지만, 서 대위(구교환)와 황 중사(김민재)를 주축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지배하는 631부대의 습격을 받는다. 그곳에서 들개(살아남은 자들을 지칭하는 말) 생활을 하고 있는 준이(이레)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정석은 반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준이와 그의 엄마인 민정(이정현)과 협력해 631부대에 맞선다. 

 <부산행>으로부터 4년이 지난 후를 묘사하는 <반도>의 기본적인 설정은 꽤나 현실감이 넘친다. 정석처럼 인근 국가로 피신한 한국인들은 국가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 밑바닥 생활을 이어가고, 해당 국가의 사람들로부터 감염자가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반도의 살아남은 이들에겐 쓸모가 없는 돈과 귀중품을 훔쳐온다는 아이디어도 그럴듯하다. <워킹데드>나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어느 정도 좀비 아포칼립스가 진행된 상황을 묘사하는 콘텐츠들처럼,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 속에서도 세력을 형성하고 맞서고 있다. 여기서 좀비는 환경이지 적이 아니다. 적은 다른 세력의 협력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때문에 한국의 관객으로서 <반도>에 기대하는 것은 폐허가 된 남한을 어떻게 그려내는가였다. 

 이 측면에서 <반도>는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다. 2000만 달러가 든 트럭이 버려진 오목교에서 벌어지는 좀비와의 혈투와 카체이싱이라던가, 현대 오일뱅크 주유소부터 영등포 타임스퀘어 전체를 사용하는 631부대의 기지, 기지 안의 수많은 낯익은 간판들(가령 피 묻은 반디 앤 루니스 간판), 631부대가 빛과 소리에 민감한 좀비를 몰기 위해 사용하는 나이트클럽 홍보 차량 등이 어딘가 반갑게 느껴진다. 문래동 골목을 누비는 카체이싱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반도>라는 제목을 달고 인천항에서 영등포-문래동-목동 정도만을 담아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리고 ‘한국적인’ 좀비의 묘사를 이미 선보이면서 파괴된 롯데 월드타워를 보여주기까지 한 <기묘한 가족>이라는 선례가 있지만, 곳곳을 누비며 폐허가 된 현대 서울의 이미지를 보여준 것은 <반도>가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다. 

 다만 그 밖의 모든 부분들이 아쉽다. <부산행>의 단점으로 여겨졌던 신파 코드는 그것이 해외에서 호평받았기 때문인지 더욱 많은 분량으로 등장한다. 그것도 슬로 모션과 플래시백을 남용하며 액션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예고편에서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매드 맥스> 시리즈부터 <고지라>의 조명탄 장면, <존 윅: 리로드>의 카타콤 전투,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의 지하 주차장 장면, <새벽의 저주>에서 트럭으로 좀비들을 들이박는 장면 등 유사 장르에서 가져온 수많은 장면들은 그 레퍼런스를 너무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에 도리어 맥이 빠진다. 대부분이 CG로 만들어진 카체이싱 장면들은 외면적으로 화려해 보이긴 하지만 공허하게 붕 떠 있는 질감 때문에 액션의 쾌감을 반감시킨다. 15세 관람가라는 한계 때문에 장르적인 묘사를 포기한 장면들도 단점이다. 

 때문에 <반도>는 처음부터 국내시장보단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제작된 영화처럼 느껴진다. 해외에서 호평받았던 요소(신파 코드)를 더욱 추가하고, 홍콩의 네온사인 이미지나 폐허가 된 서울의 이미지를 비롯해 서구권 관객에게도 익숙할 사이버펑크 및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이미지를 선보인다. 물론 폐허가 된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점령하고 그곳을 <매드 맥스 3>의 썬더돔 같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등의 시도는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의도치 않은 웃음과 묘하게 설득력 있는 디테일을 제공한다. 난민과 관련된 주제들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나름 시의적절한 코멘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파 코드나 한국적인 요소 등은 한국의 관객들에겐 감동과 웃음보단 실소를 유발하는 요소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반도>는 185개국에 선판매되어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국내 관객수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여기엔 물론 <부산행>의 성공을 비롯해 드라마 <킹덤>이나 <기생충>의 흥행 등이 요건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결국 <반도>는 해외시장을 위한 한류 수출품에 가깝다는 다소 결정론적인 해석이다.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좀비 코미디 <기묘한 가족>이 영국에서 컬트 코미디로 분류되어 배급된 것을 생각하면, <반도>가 해외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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