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28. 2020

<블루 아워> 하코타 유코 2019

*스포일러 포함


 영화의 제목인 ‘블루 아워’는 해가 뜰 때, 그리고 해가 질 때 찾아오는 시간이다. 해가 뜨고 지는 곳의 반대편에 놓인 짙은 푸른색의 하늘. 하코타 유코의 장편 데뷔작인 <블루 아워>는 노을의 이면을 쫓아간다. CF 감독인 스나다(카호)는 어딘가 권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 꼬장 부리는 중년 남배우를 어르고 달래어 촬영을 이어 나가고, 어딘가 일상의 취향이 맞지 않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고, 불륜 대상인 동료는 너무 뻔하다. 그는 요양원에 머무르는 할머니의 건강이 조금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향을 다녀오려 하지만 망설인다. 그와 함께 있던 친구 기요우라(심은경)는 대뜸 그를 차에 태우고 그의 고향으로 향한다. 밤이 되면 어둠밖에 남지 않는 곳, 일평생 축사 밖을 나설 수 없는 가축들을 키우는 집, 동물과 가족에게 무자비하며 갑자기 골동품들이나 사들이는 아빠, 점점 귀가 잘 안 들리지만 기묘한 밝음을 유지하는 엄마, 중학교 교사이지만 종종 비이성적인 말을 쏟아내는 오빠. 그곳에서 스나다는 자신이 싫어했던, 그렇기에 오랜 시간 찾아가지 않고 있던 고향 시골의 면면을 재발견한다. 

 영화의 시작은 어린 스나다가 ‘블루 아워’의 시골에서 달리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종종 플래시백으로 삽입된다. 어린 스나다의 모습은 어슴푸레한 시골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가령 <곡성>이나 <극락도 살인사건>과 같은 한국 스릴러 영화들, 혹은 구로사와 기요시와 같은 일본의 스릴러/호러 영화들. 물론 이는 단순히 ‘연상된다’는 측면을 넘어서지 않는다. 스나다에게는 고향에 다녀온다는 것 이외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가 마주치는 것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 혐오하던 고향에서 있었던 과거들이다. 뜬금없이 동물의 박제나 진검과 같은 골동품을 사들이는 아빠를 보면서 자신이 밥을 주던 고양이를 죽인 과거의 아빠를 떠올린다. 어딘가 이상해진 오빠를 보면서 역겹다고 생각할 때, 어린 자신이 별 이유도 없이 곤충을 잡아 죽일 때 울던 어린 오빠를 떠올린다. 스나다에게 시골은 그런 기억과 이미지로 가득 찬 공간이다. 축사를 벗어날 수 없는 소는 근친교배를 하게 되고, 그곳의 술집에선 기요우라의 말처럼 평생 들을 음담패설을 다 들을 수 있다. 

 이 공간에선 도쿄에서 스나다를 유지해왔던 표정을 이어나갈 수 없다. 술집의 주인은 다른 손님과 노래를 부르는 기요우라를 보며 웃는 스나다에게 “네 웃음은 가짜”라고 말한다. 중학교 교사인 오빠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적인 상황을 농답이랍시고 말한다. 스나다는 자신이 역겹다고 말하던 것들을 마주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CF 촬영 현장에서 스나다는 자신의 화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대신 그것은 술자리 뒷담화 비슷한 것으로 파생된다. 술자리에서 언급되는 대화의 소재 또한 스나다를 화나게 한 배우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가짜 웃음’의 대상은 모호하고 일상 전체를 포괄한다. 반면 ‘역겨움’의 대상은 명확하고, 스나다는 그것을 회피한다. 역겨움이 위치한 장소로 되돌아가는 스나다의 여정은 회피해오던 것과 대면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스나다가 기요우라에게 빌려준 카메라의 존재는 특별하다. 기요우라는 스나다의 고향을 모른다. 어렴풋이 자신의 고향과 유사한, 산과 바다가 있는 시골이라 생각할 뿐이다. 영화를 찍고 싶다며 카메라를 빌린 그는 여행 내내 무엇인가를 찍는다. 그가 찍은 것들은 스나다에겐 역겨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것, 죽음에 가까운 이미지들이다. 축사의 가축, 박제된 동물, 아빠가 휘두르는 진검, 어린 시절에 죽였던 곤충. 스나다 또한 카메라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그가 직접 무언가를 촬영하는 장면은 드물게 등장한다. 그가 직접 촬영한 대상은 엄마와 할머니, 둘뿐이다. 할머니는 스나다가 고향에 돌아온 목적이고, 엄마는 스나다를 고향으로 부른 인물이다. 스나다가 자신의 의지로 마주할 수 있는 고향은 그 두 이미지다. 죽음의 이미지가 들끓고 스산한 분위기의 인물과 상황으로 가득한 시골에서, 스나다가 그러한 이미지를 마주하는 방식은 엄마와 할머니라는 이미지, 그리고 기요우라가 촬영한 이미지를 경유하는 것이다. ‘하이 텐션’의 기요우라는 스나다가 회피해왔던 것들에 별 다른 거부감 없이 접근한다. 

 스나다는 영화의 마지막, 고향을 떠날 때가 돼서야 그 이미지들을 마주한다. 도쿄로 돌아가는 차에서의 장면과 함께 기요우라가 촬영한 이미지들이 스나다가 촬영한 할머니 및 엄마의 이미지와 뒤섞여서 제시된다. 차는 노을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스나다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짙은 푸른색의 하늘을 바라본다. <블루 아워>는 트라우마적인 과거를 되짚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영화가 아니다. 일본의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며 ‘힐링’하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는 죽음이 아닌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이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한 고향과 충돌하며, 자신이 회피해왔던 역겨움과 불쾌감을 직시하는 과정을 다룬다. <블루 아워>가 ‘힐링 영화’라면, 이면으로써 회피해온 것들과 마주하는 방법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힐링’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람작 간단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