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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05. 2020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2020

*스포일러 포함


 국정원 암살요원이던 인남(황정민)은 프로젝트가 해산된 이후 청부살인업자로 활동 중이다. 일본에서 활동 중이던 그는 방콕에 있는 과거의 연인 영주(최희서)가 살해되고 그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방콕으로 향하는 인남, 하지만 그가 일본에서 암살한 범죄조직 간부의 동생이자 ‘백정’이란 별명을 가진 살인청부업자 레이(이정재)가 복수를 위해 그를 뒤쫓는다. 인남은 방콕에서 만난 유이(박정민)의 도움을 받아 연인의 딸을 찾으려 하고, 그것을 레이가 뒤쫓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스릴러 영화 <오피스>를 통해 호평받으며 데뷔한 홍원찬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하드보일드 액션 장르를 표방한다. 영화는 쫓고 쫓기는 두 남성의 이야기에서 기승전결을 최대한 간단하게 풀어내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두 남성의 충돌에 집중한다. 

 물론 이 영화가 뻔한 지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배우끼리 17살 차이가 나는 황정민과 최희서가 연인으로 나온다는 점 또한 언급하기도 귀찮아질 정도로 한국영화들에 쏟아지는 지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뻔한 지점들을 상쇄할 만한 장점을 지니지도 못한다. 장점이 되지 못해 가장 아쉬운 것은 액션이다. 영화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여러 액션 영화들을 레퍼런스 삼는다. 가령 <레이드: 첫 번째 습격>의 복도 액션, <아토믹 블론드>의 계단 액션과 같은 장면을 이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문제는 레퍼런스 삼은 이 영화의 액션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그러한 액션이 벌어질 것임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액션이 시작되면서 안무, 촬영, 편집, 공간 등의 요소를 레퍼런스 삼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액션이 시작되기 1~3분 전부터 특정 영화의 특정 장면을 레퍼런스 삼은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수준이다. 여기서 경고라 함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액션이 레퍼런스 삼은 영화들의 액션 시퀀스보다 질이 떨어지기에 기대감을 갖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액션이 영화가 레퍼런스 삼은 영화들보다 아쉬운 것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우선 황정민과 이정재는, 물론 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액션 시퀀스를 소화하긴 했었지만, 영화가 레퍼런스 삼은 영화 속 배우과 같은 ‘액션 배우’가 아니다. 사실 이는 2010년대 한국 액션영화 대부분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마동석을 제외하면 액션을 자신의 주된 포인트로 삼은 배우가 거의 없다. 즉, 액션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가 거의 없다. 때문에 이 영화의 카메라는 레퍼런스 영화의 롱테이크들과 다르게 1초에 5컷 이상의 컷을 사용하고, 카메라를 많이 흔들고, 무기나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프레임을 빼 타격감을 만들어낸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총기가 발사될 때의 사운드가 훌륭한 것이 액션 시퀀스의 유일한 장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굳이 영화가 레퍼런스로 삼는 해외 영화들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이 영화의 액션은 <아저씨>에서 원빈이 선보인 것에 비해 지루하다. 인남이 호텔에서 방콕 범죄조직원들과 혈투를 벌이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적과 마주친 인남은 권총으로 이들을 쏴 죽이고, 칼을 빼앗아 휘두른다. 권총을 쏠 때는 안정적인 카메라는 칼을 사용한 격투가 등장하면 정신없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수없이 나뉜 컷이 지나가면 어느새 인남의 배에 칼이 박혀 있다. 관객은 무엇이 지나갔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 배에 칼이 박혀 신음하는 인남을 본다. 이 장면에서의 액션은 무엇을 ‘Act’한 것인가? 

 액션에 대한 아쉬움을 제외하면 더더욱 남는 것이 없다. 황정민과 이정재는 분명 <신세계>의 후광을 염두에 둔 캐스팅이다. 하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세계 2>가 아니다. 홍원찬 감독도 이를 분명히 알고 있으며, 애초에 영화의 톤과 장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배경이 되는 공간일 것이다. 인남이 레이의 형을 암살하고 연인의 죽음을 알게 되는 초반부는 일본에서 펼쳐진다. 그에게 일감을 주는 이와 그를 쫓게 되는 레이는 자이니치(재일 한국-조선인)이다. 영주가 살해당하고 두 사람 사이의 딸이 납치되는 공간은 방콕이다. 영주의 살해와 딸의 납치를 주도한 인물은 사기죄로 한국에서 도망쳐 방콕에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이어가는 종수(오대환)이다. 극의 중심이 되는 인남은 자신이 속해 있던 국정원 프로젝트가 해체된 이후 해외 곳곳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극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이는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요소들을 타자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백정’이라 불리는, 타겟을 매달아 놓고 배를 가르는 인물인 레이는 ‘한국인’이 아니라 ‘자이니치’다. 영주를 죽이고 인남의 딸을 납치한 이들은 태국의 범죄조직이다. 태국은 장기밀매, 인신매매의 온상처럼 묘사된다. 경찰은 범죄조직의 돈을 받고, 범죄조직은 아이들을 착취한다. <신세계>는 결국 외부(중국)에서 온 세력을 제거하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서 성인 여성은 살해당하고, 아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공개된 이후 가장 많이 비교되는 <아저씨>에서도 성인 여성은 살해당하고, 아이는 납치되었다. ‘하드보일드’와 같은 타이틀로 홍보된 여러 한국영화 속에서 폭력과 위협은 항상 타자에게서 온 것이거나 타자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었고, 그 폭력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과 아이였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그 공식을 철저하게 따라간다. 

 이 공식에서 유일한 예외라면 유이의 존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유이는 트랜스여성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차별과 수술 문제 때문에 방콕에 온, 스스로 타자의 위치에 선 인물이 아니라 타자이기에 타지에 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물론 유이가 처음 등장한 시점에서 그는 유머를 담당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영화는 시스젠더 남성 배우가 트랜스여성을 연기했을 때의 괴리감을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두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코미디 요소로 사용한다. 이는 박정민이라는 스타 남성배우가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화 개봉 전의 홍보과정 대부분에서 배제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영화의 홍보는 저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유이의 캐릭터는 변화하게 된다. 그 과정은 동참하길 꺼려했으나 결국 대상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정의로운 조력자가 되는 인물의 전형이다. MCU의 욘두나 발키리 같은 캐릭터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즉 유이는 인남이 구출하고자 했던 딸의 부모 역할을 최종적으로 맡게 된다. 인남과 레이의 충돌은 결국 두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고, 유이는 인남의 딸을 데리고 인남이 여생을 보내려던 파나마로 향한다.

 그간 한국 상업영화에서 트랜스젠더는 아예 재현되지 못하거나, <천하장사 마돈나>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처럼 주로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 물론 언급한 두 영화가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의미에서만 트랜스젠더를 재현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유이와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 사례는 없다. 많은 것을 장르 관습에 기대고 액션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영화이지만, 유이가 인남의 딸과 단둘이 파나마로 떠나 해변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의 엔딩은 꽤나 인상적이다. 물론 그동안 한국 상업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재현이 등장했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긍정할 생각은 없다. 언급한 것처럼 유이는 영화의 코미디를 담당하는 캐릭터로 사용되고, 이때의 코미디는 미디어 속 트랜스젠더 재현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위 없는 부성애와 당위 없는 형제애가 충돌해 둘 모두가 파멸을 맞이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트랜스여성 캐릭터에게 유사-부모의 역할이 주어진다는 점은 조금 더 다양한 논의를 필요로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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