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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07. 2020

<워터 릴리스> 셀린 시아마 2007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톰보이>를 연출한 셀린 시아마의 장편 데뷔작 <워터 릴리스>가 뒤늦게 개봉한다. 영화는 우연히 싱크로나이즈 선수 플로리안(아델 에넬)에게 첫눈에 반한 마리(폴린 아콰르), 그리고 플로리안의 남자친구 프랑수아를 좋아하게 된 마리의 단짝친구 안나(루이즈 블라쉬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묘한 사각관계를 이루는 이들의 이야기는 불안정한 청소년기의 감정과 거친 관계의 절단을 포괄한다. 셀린 시아마의 최근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그의 야심을 완벽하게 이미지화한 결과물이고, <톰보이>가 완벽하게 의도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절충이라면, <워터 릴리스>는 영화의 거친 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는 셀린 시아마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인 장면일 마리가 플로리안의 싱크로나이즈 팀이 연습하는 장면을 물속에서 보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플로리안은 마리에게 물속에서 보는 것이 더 잘 보인다 말하고, 마리는 그 말을 따른다. 마리의 눈을 통해 목격하게 되는 것은 수면 위에서의 우아한 동작 및 표정과 상반되는, 물속에서 기이하다 느껴질 정도로 힘차게 움직이는 다리들이다. 그리고 수면 위와 아래의 위치는 계속해서 바뀐다. 싱크로나이즈는 모든 팀원이 동시에 같은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워터 릴리스>는 수면의 아래에 주목하는 영화다. 관계의 외면은 관계를 그려내지 못한다. 플로리안은 ‘헤픈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실은 동정이고, 모두가 플로리안이 남자친구인 프랑수아와 잤을 것이라 여기지만 결국 프랑수아와 섹스하는 인물은 그를 짝사랑하던 안나이다. 안나가 훔친 목걸이가 프랑수아에서 플로리안에게, 그 때문에 플로리안의 목걸이가 마리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한 인물의 어떤 행동은 네 인물의 관계 속에서 미시적인 나비효과를 낳는다. 

 수면 아래와 위,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영화 내내 등장한다. 플로리안이 버린 쓰레기를 훔쳐와 화장솜의 냄새를 맡고 먹다 버린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마리, 첫 키스의 순간 앞에서 키스 대신 상대방의 입에 침을 뱉는 안나, 목걸이를 입 속에 넣어 훔치는 안나 등. 마리는 상대의 것으로 자신을 오염시키려 하고, 안나는 자신이 오염시킨 것을 통해 상대를 오염시키려 한다. 여기서 오염이란 신체 내부에 있었다가 밖으로 나온 것, 혹은 그러하기에 혐오감(disgusting)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나에서 다른 것으로, 혹은 다른 것에서 나로 전염됨이다. 이는 상대를 나와 같은 위치와 상황으로 옮겨오려는 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신체는 수면과 다르게 경계가 불분명하다. 불분명한 신체의 경계를 무력화될 때는 외적으로 보이는 신체나 관계가 마리나 안나의 행동을 통해 내적으로 오염되는 경우이다. 

 반면 플로리안은 마리나 안나처럼 불분명한 경계를 지닌 인물이 아니다. 그의 헤테로섹슈얼 정체성은 확고하다. 마리가 목격한 그의 싱크로나이즈 연습 장면처럼, 그는 경계 외면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인물이다. 확고하게 선이 그어진 정체성은 그 밖으로 돌출되는 행위들을 다시 경계 안으로 밀어 넣는다. 프랑수아와의 첫 관계를 앞두고 “처음이 아닌 것처럼 해야 한다”며 안절부절못해 하는 모습과 첫경험을 마리에게 부탁하는 모습은, 플로리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정한 두 경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운동이지, 마리와 안나처럼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인물이 아니다. 안나가 맥도날드 직원에게 우겨서 해피밀 세트를 사 먹고, 마리가 다음 달부터 등록이 시작되는 수영장을 무턱대고 들어가려 시도하는 것에 비하면, 플로리안은 자신의 행동반경을 자신의 외적인 면과 일치시키려 한다. 프랑수아와 데이트하러 집을 나오기 위해 마리를 이용하는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마리와 함께하며 플로리안은 종종 경계 밖으로 돌출된다. 마리와 안나의 경우 이 돌출이 신체를 활용한 ‘오염’의 테마를 통해 드러났다면, 플로리안의 경우엔 영화의 프레임이라는 영화적 경계를 통해 돌출된 상태가 다시 경계 안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플로리안과 마리가 함께 클럽을 찾은 장면에서, 함께 춤을 추던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키스를 나눌 것처럼 가까워진다. 어느 순간 마리의 눈 앞에 있던 플로리안은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이어지는 풀숏에서 플로리안의 뒤에 나타난 남성의 존재가 플로리안을 프레임 밖으로 끌어냈음을 알게 된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셀린 시아마의 다른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오르페우스 장면’과 갑작스레 나타난 남성의 존재, <걸후드>에서 프레임 밖을 향하는 마리엠의 마지막 숏, <톰보이>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프레임 밖에서부터 로레/미카엘에게 다가오는 리사 등이 그러하다. 마리와 안나의 신체가 모호한 경계를 지니는 것으로써 상대방을 오염시키는 것을 시도한다면, 플로리안을 사라지게 하는 영화의 프레임은 경계의 위반과 침범으로써 작동한다. 때문에 <워터 릴리스>는 불분명한 경계로써의 신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셀린 시아마의 다른 영화와 차이를 둔다. 이 지점이 수영장 수면에 둥둥 떠 카메라를 바라보는 마리와 안나의 모습으로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 숏이 주는 불안정함의 감흥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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