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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2. 2020

<반교: 디텐션> 존 쉬 2019

*스포일러 포함


 계엄령이 내려진 60년대 대만, 군사정권의 폭압으로 인해 학교의 학생들은 군복을 연상시키는 교복을 입고 군인처럼 행렬을 맞추어 이동한다. 학생인 팡레이신(왕정)과 웨이충팅(청징화)는 태풍으로 길이 막힌 밤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깨어난다. 두 사람은 선생인 장밍후이(장명휘)를 비롯한 학교 사람들을 찾으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되려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들이 이들 주변에 나타나고, 두 사람은 학교와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들의 조각들을 맞춰 나가기 시작한다. 동명의 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존 쉬의 영화 <반교: 디텐션>은 군사독재에 의해 탄압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호러영화다. 언뜻 5.18 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을 다룬 여러 한국영화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나 <비정성시>처럼 같은 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영화는 2D 횡스크롤 게임을 3D로 이식해오며, 사건의 모든 전말이 후반부에 밝혀지는 게임과는 다른 서사구조를 취한다. 게임이 학교의 곳곳을 탐색하며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단서들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탈출해야 하는, [화이트데이]나 [검은 방]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반면 영화는 마치 소규모의 오픈월드처럼 꾸며져 있지만 실은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쫓아가야 하는 스토리 위주의 게임들을 연상시킨다. 사건의 진실은 게임의 컷씬처럼 팡레이신과 웨이충팅의 플래시백을 통해 등장하고, 해당 플래시백이 등장하기 전에 두 주인공이 이런저런 단서와 공간들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종종 초기 [바이오 하자드]의 고정된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복도를 비롯한 공간들을 담다가, 귀신 차사가 가까이 접근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의 코앞까지 다가가는 등의 카메라 무빙도 어딘가 게임의 카메라를 연상시킨다. 때문에 <반교: 디텐션>은 게임, 그것도 2D 횡스크롤 게임을 실사영화로 옮겨올 때 ‘게임스러운’ 화면과 구성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해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의 측면에서, 영화는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을 영화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밀고자와 생존자가 각각 지니는 죄의식이라는 테마를 강화한다. 가령 팡레이신은 웨이충팅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는다. 물론 팡레이신이 장밍후이의 어깨에 기대거나 손을 잡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나 유령의 등장에 가깝다. ‘악몽’이라 이름 붙여진 영화의 챕터 구분이 알려주듯이 팡레이신과 웨이충팅의 물리적 접촉 또한 실제로 벌어진 것이 아니기도 하다. 심지어 팡레이신은 가정폭력을 당한 어머니의 상처에 물수건을 대지도 못하고, 헌병에게 끌려가는 아버지를 붙잡지도 못한다. 그는 그 누구도 붙잡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는 충팅웨이가 헌병들에게 폭력적인 접촉(고문)을 당하는 것과 대비된다. 즉,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한 팡레이신은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통해 속죄로 나아간다. 웨이충팅의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은 구천을 떠도는 팡레이신의 속죄와 맞물려 일종의 희망을 보여주는 결말로 나아간다. 살아남은 자는 사람과 공간과 기억과 접촉할 자유를 얻는다. 영화는 그렇게 닿지 못하게 된 것, 혹은 그렇게 되려는 것에 닿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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