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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3. 2020

<테넷> 크리스토퍼 놀란 2020

*스포일러 포함


 주인공(존 데이빗 워싱턴)은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비밀그룹 테넷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동료 닐(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엔트로피 개념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기술 ‘인버전’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사토르(케네스 브레너)에게 맞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테넷>은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악당에게 맞서는 임부를 부여받은 프로타고니스트를 주인공으로 삼은, 그러니까 <007> 시리즈와 유사한 전제를 바탕에 둔 작품이다. 007이 (물론 이름은 있지만) 코드네임으로 불리는 것처럼, <테넷>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이 ‘프로타고니스트(자막은 주도자)’로 불릴 뿐이다. 거기에 적절한 조력자 캐릭터인 닐, 본드걸 같은 포지션인 사토르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 인도와 영국의 원로배우들이 각각 연기한 조직의 원로격 캐릭터인 프리야(딤플 카파디야)와 크로스비(마이클 케인) 등의 배치 또한 <007> 시리즈와 같은 영화를 연상시킨다. 

 사실 이 영화가 더 적극적으로 연상시키는 영화는 <인터스텔라>나 <메멘토>처럼 시간을 정면에 내세운 놀란의 다른 영화라던가, 시간여행을 소재로 삼은 <터미네이터>와 같은 작품이다. 독특한 미래기술과 이를 활용한 스케일 큰 액션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인셉션>이 떠오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테넷>은 <인셉션> 스타일로 스케일을 키운 <메멘토>인데, 시간이라는 컨셉을 다룸에 있어서는 <터미네이터>나 <빽 투 더 퓨처>와 같은 작품들이 다룬 ‘타임 패러독스’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작품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테넷>은 <프레스티지>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만큼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크게 기대한 바도 없긴 하지만.

 <테넷>의 장면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면 <메멘토>와 비슷한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영화가 다루는 타임라인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사건이 영화의 최후반부에 등장하고, 그 사건을 향해 사건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과 이후에 벌어진 사건들이 모여든다. 엔트로피를 역행하게 하여 시간의 흐름을 되돌린다는 설정의 ‘인버전’ 기술은, <메멘토>가 다른 시간대의 사건들을 컬러와 흑백으로 나누어 보여준 것과 다르게, 한 프레임 안에 시간대로 흐르는 인물/사물과 반대로 흐르는 인물/사물을 배치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때문에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전투 시퀀스는, 놀란의 모든 영화들처럼 액션을 정말 못 찍었음에도, 신선한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어쨌든 역행하는 것들 것 순행하는 것들이 한 장면 속에서 뒤섞일 때의 흥미로움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라는 대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영화에서 진행되는 사건들은 대부분 이미 벌어진 일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지구의 환경파괴로 인해 ‘할아버지 역설’로 불리는 타임 패러독스와 상관없이 과거 세대를 엄벌하기 위해 미래의 지구인들이 인버전 기술을 통해 과거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설정은 영화 중반에 무가치해진다. 사토르는 자신이 있는 현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알고리즘’을 모아 미래인에게 전달하려 한다. 그것을 모두 모았음을 알리는 방법은 자신의 죽음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그는 자신의 죽음과 세계의 멸망을 동일시한다. 영화 후반부에 벌어지는 전투, 영화가 다루는 타임라인의 중간을 차지하는 사건은 어느 순간 ‘이미 벌어진’ 사건이 된다. 때문에 영화의 타임라인을 선형적으로 재구성했을 때, 후반부 전투 이후의 시간대가 등장한다는 것은 이미 주인공이 활동하는 현재의 세계가 멸망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놀란은 관객들이 이를 알아채는 것을 영화의 엔딩까지 유보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결국 <테넷>이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반복해서 보여줬던 것을 영화 한 편에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가 개입하고, 어느 순간 그러한 개입이 하나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주인공이 닐을 테넷에 합류시킨 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타임라인 이후의 사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테넷>의 이야기는 사라 코너(혹은 존 코너)를 죽이기 위해 끝없이 터미네이터를 보내던 4편을 제외한 모든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반복이다. 도리어 단 하나의 순환구조를 만들어두고, ‘이미 벌어진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 사이의 차이만을 둔 채 각 사건들을 그려내는 방식은 <터미네이터> 1, 2편의 낭만적인 희망이나 3편의 비관조차 존재하지 않는, 변화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는 다섯 겹의 중첩된 꿈의 세계로 파고들어, 혹은 5차원을 통과하여 어딘가에 도달한다. <테넷>과 서사구조가 거의 동일한 <메멘토>가 결국 다층적 의미에서의 ‘나’를 마주하는 것으로 향한다. 반면 <테넷>의 ‘주도자’는 어딘가로 향하지 않는다. 시민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둔 채로 떠난 다크 나이트가 되돌아오자 보수적인 세계를 드러내버린 <다크 나이트 라이즈>처럼, <테넷>은 모든 것을 ‘벌어진 일’에 고정시킨 채 변화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주도자는 변화하지 않을 폐곡선을 주도한다. 여기엔 부성애(<인셉션>, <인터스텔라>)도, 신뢰(<다크 나이트>)도, 자아(<메멘토>)도, 위대한 승리(<덩케르크>)도 없다. 매 영화마다 세계 정복 혹은 멸망을 꿈꾸는 새로운 악당에 맞서 세계를 유지하는 007의 폐쇄된 세계처럼, 주도자는 세계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을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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