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 빠져들고 마는 폐곡선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다룬 에단 호크의 영화 <본 투 비 블루>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영화의 오프닝, 어느 감옥에 갇힌 쳇 베이커(에단 호크)를 누군가 데리고 간다. 쳇 베이커 자신이 직접 자신의 전기영화의 주연을 맡아 영화를 찍기 위함이다. 흑백의 영화 속 영화엔 뉴욕의 버드랜드에서 첫 공연을 가진 뒤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무시당하는 20대 전성기 쳇 베이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쳇은 영화에서 자신의 전처 일레인 역을 맡은 제인(카르멘 에조고)와 사랑에 빠지지만, 사고로 트럼펫을 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절망한다. 문자 그대로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다시 트럼펫을 불게 된 쳇은 예전 파트너 딕(칼럼 키스 레니)과 함께 새 음악을 녹음하고 공연을 시작한다.

<본 투 비 블루>는 실존인물인 쳇 베이커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대부분 실화가 아니다. 쳇 베이커가 심각한 헤로인 중독자로써 폐인처럼 살았고, 마약상에게 폭행을 당해 앞니를 잃고서 트럼펫을 못 불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쳇 베이커가 직접 자신의 전기 영화에 출연했다던가(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의 연인 제인 등은 실제로 없던 일이고, 없던 사람이다. 때문에 영화는 쳇 베이커의 삶을 재구성한 전기영화라기보다, 쳇 베이커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그리는 드라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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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제에 영화 속 영화는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는 쳇 베이커가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가지고 있는 열등감, 헤로인 중독, 쳇 베이커의 성격, 여성편력, 그의 인기 등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쳇 베이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모를 관객들도 초반부 흑백으로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를 잠시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속 영화는 <본 투 비 블루> 내내 쳇 베이커의 플래시백으로 간간이 등장한다. 영화 속 영화와 영화 본편에서 같은 배우가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는 설정이 굉장히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 낸다. 쳇 베이커가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듯한 순간들이 계속해서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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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쳇 베이커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지점들이 후회의 감정일지언정 남은 생을 구원하거나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결국 그의 삶은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 데이비스처럼 폐곡선을 그리고 있고, 제인은 그의 전 부인들처럼 떠나가며, 헤로인은 여전히 그를 따라다닌다. <본 투 비 블루>는 <비긴 어게인>처럼 잘 빠진 음악들을 라이브로 전시하는 음악영화는 아니다. 헤로인과 마약중독 치료제 메타돈을 번갈아 하면서 망가진 몸과 계속해서 연인을 떠나보내며 금이 간 정신에서, 뮤지션으로 남기 위한 쳇 베이커의 몸부림이 담긴 음악이 영화 안에서 흘러나온다. 97분의 길지 않은 상영시간 끝에 쳇 베이커가 ‘Born to be Blue’를 부르는 장면이 다다르면 쳇 베이커와 함께 빠져나올 수 없는 폐곡선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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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비 블루>라는 영화의 일등공신은 역시 에단 호크이다. <리그레션>을 제외하면 <보이후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타임 패러독스> 등으로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에단 호크의 연기는 <본 투 비 블루>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쳇 베이커로 변신한 에단 호크의 눈빛은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의 멱살을 잡아 스크린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제인 역을 맡은 카르멘 에조고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쳇 베이커의 조력자이자 연인으로써 극의 입체감을 더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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