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정하는 배우 하나가 또 세상을 떠났다. 43세. 대중의 눈에 그가 들어온 것은 아마도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0에 '블랙 팬서'로 출연했을 때일 것이다. 채드윅 보스먼의 출연작을 처음 본 것은 (하필이면) 알렉스 프로야스의 <갓 오브 이집트>(2016)였다. 여기서 그는 이집트 신화 속 지혜의 신 세트를 연기했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개봉한지 2달 정도 뒤 <시빌 워>가 개봉했다. 그제서야 블랙 팬서가 <갓 오브 이집트>의 세트였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출연하기 전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웅들을 연기했다. MLB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을 연기한 <42>(2013)와 전설적인 소울 가수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한 <제임스 브라운>(2014)이 그것이다. 그의 몸이 재현하는 것은 항상 영웅 혹은 그에 가까운 존재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인 셔굿 마셜을 연기한 <마셜>(2017)은 최근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투신하던 그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블랙 팬서> 개봉 당시 지미 팰론 쇼에 출연한 채드윅 보스먼은 영화의 포스터 앞에 서서 블랙 팬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몰래 다가가는 깜짝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출연한 중년 여성 관객은 블랙 팬서가 버락 오바마와 함께 자신의 아들에게 중요한 재현이었음을 증언한다. 생각해보면 지난 5년 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다양한 재현을 보여주는 여러 영화들이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었다. 힙합그룹 N.W.A.의 흥망성쇠를 다룬 개리 F. 그레이의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튼>(2015)의 흥행을 시작으로, 흑인 여성 과학자들을 다룬 <히든 피겨스>, 흑인 퀴어 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베리 젠킨스의 <문라이트>(2016), 흑인의 특성이라 규정되는 것들을 침략하려는 백인들의 식민주의적 욕망을 담아낸 <겟 아웃>(2017), 또 다른 흑인 슈퍼히어로의 재현을 보여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또는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나 독립영화 씬에서 주목 받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들, 가령 <도프>(2015), <퀸 앤 슬림>(2019), <미국 수정헌법 제13조>(2016), <치욕의 대지>(2017),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2019), <시간의 주름>(2018), <루크 케이지>(2016~2018),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2017~), <포즈>(2018~),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2019) 등. <블랙 팬서>는 이들 중 가장 거대한 영화였고, 압도적인 흥행을 보여줬으며, 다양한 재현을 보여주고 있다. <블랙 팬서>는 북미 박스오피스에 거대한 쐐기를 박는 사건이었다. 흑인 남성 영웅 외에도 다양한 위치에 놓인 여성 캐릭터들(스파이, 과학자, 여왕, 군인)이 등장했으며, <캡틴 마블>(2019)와 더불어 MCU의 세계에 소수자성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링크한 트윗에 있는 영상은 <블랙 팬서>를 단체관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애틀랜타 Ron Clark Academy의 학생들이다. 영상은 순식간에 밈이 되었고, 뭔가를 기대하며 설레이는 상황에 종종 등장한다. 앞서 링크한 영상 속 흑인 영웅 재현에 대한 진술과 이 영상은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블랙 팬서>에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보려 했는지를 알려준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6부작 다큐멘터리 <하이 스코어>(2020)에 출연한 고든 벨라미는 대중매체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재현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준다. 스포츠 게임을 주로 제작해온 EA의 초창기 게임들에는 흑인 선수들이 없었다. MLB나 NFL, NBA 등이 모두 게임으로 출시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재현은 없었다. 그는 노력 끝에 EA에 입사했고, NFL 게임에 흑인 선수를 추가했다. 대중매체의 재현 속에서 자신과 같은 존재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영상매체 속 트랜스젠더 재현을 다룬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2020)의 인터뷰이로 출연한 트랜스젠더 배우들은 모두 어린 시절 TV나 영화에서 재현된 (그것이 부정적일지라도) 트랜스젠더 이미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증언한다.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의 재현이 거대한 규모의 대중매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나 <블랙 팬서>는 1950년대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시작한 '블랙 프라이드' 운동 및 최근의 '블랙 페미니즘' 운동 등의 맥락을 끌어오고, '아프로퓨처리즘' 이미지를 통해 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때문에 채드윅 보스먼이 4편의 MCU 영화에서 재현한 것은 단순한 코믹스 원작 캐릭터가 아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리드머 칼럼(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8151&m=view&s=feature&c=21&p=2)을 참조하길.
2. 채드윅 보스먼은 2016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 미공개된 조지 C. 울프의 <Ma Rainey's Black Bottom>를 포함하면 2016부터 지금까지 그는 1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물론 MCU의 <왓 이프> 시리즈나 <블랙 팬서 2>처럼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차기작들도 존재한다. 블랙 팬서로 출연한 4편의 영화를 제외하면, 그가 연기한 역할은 이집트의 신,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 살해된 동생의 복수를 감행하는 이민자, 경찰, 베트남전 참전 군인, 20세기 초의 트럼펫 연주자이다. 채드윅 보스먼의 마지막 트윗은 얼마 전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말라 해리스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지난 6월 미국에서 BLM 운동이 벌어졌을 때 그는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 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운동가였다.
동시에 우리는 그가 '남성'이기에 말할 수 있었던 것들 또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그는 흑인 영웅을 재현하던 배우이자 운동가이지만, 동시에 기득권인 '남성'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블랙 팬서로 인기를 얻을 때 즈음,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네이트 파커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영화가 훌륭하다면, 그들에 대한 판단을 유예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게 바로 극장 경험이고 스토리텔링이다. 네이트 파커가 감독한 <국가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에 따르면, 박스오피스 흥행작이자 시상식 후보에 오르는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달에 파커의 과거가 불거지면서, 이 영화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이 영화를 본 사람으로써, 여러분에게 이 영화에 대한 지지를 표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라고 채드윅 보스먼은 말했다. 물론 네이트 파커가 흑인이기에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유사한 범죄의 가해자인 수많은 백인 남성 영화인과 달리 커리어가 묻혀버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네이트 파커는 자신의 신작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했다. 채드윅 보스먼의 연기와 활동은 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명백한 2차 가해인 그의 발언은 누군가의 가해 사실을 정당화하고 누군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당연히 모든 영웅이 영웅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MCU에 출연한 남성 배우들의 발언들을 떠올려보자. 크리스 에반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폴 베타니, 톰 홀랜드, 크리스 햄스워스, 조시 브롤린, 앤서니 맥키, 세바스찬 스탠, 크리스 프랫, 데이브 바티스타가 저지른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발언과 행동, 2차가해를 기억해야 한다. 채드윅 보스먼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채드윅 보스먼이 배우로서, 운동가로서 이루어낸 것과 그의 2차가해 사실은 이미 공존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 중에서 무엇 하나를 지우는 것 자체가 그에 대한 결례이다.
3. 지금까지 공개된 채드윅 보스먼의 마지막 작품은 스파이크 리의 <Da 5 블러드>(2020)이다. 여기서 그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자 전장에서 전사한 인물인 노먼을 연기한다. 여기서 노먼은 망령이다. 흑인 참전 군인들이 노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전쟁 당시 베트남 어딘가에 숨겨둔 금괴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의 영화에서, 전쟁 당시의 장면이 등장할 때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나이든 모습 그대로이지만 노먼은 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는 전쟁에 박제되었다. 나이든 전우들이 다시 만난 그는 백골의 모습이다. 전우들이 기억하는 노먼은 전쟁영웅이자 어처구니 없이 사망한 전우이고, 용맹한 군인이자 무책임한 동료이다. 비록 <Da 5 블러드>는 실패작에 가깝지만, 극 중에서 노먼을 기억하는 방법은 우리가 채드윅 보스먼을 기억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며 돌진하던 영웅이었던 그는 동시에 누군가의 범죄 사실을 묵인하려 했던 2차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를 영웅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그의 과오를 덮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공존하는 유산과 과오를 함께 인정하면서 가능하다.
Rest in Peace and 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