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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1. 2020

<뉴 뮤턴트> 조시 분 2020

*스포일러 포함


 “Who knows when the f**k that’s gonna come out”라고 레인/울프스베인을 연기한 메이지 윌리엄스가 말했다. 그것도 2019년 3월의 발언이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 또한 1년가량 개봉이 연기된 끝에 2019년 6월에 개봉했지만, <뉴 뮤턴트>는 결국 진행되지 않은 재촬영 이슈와 20세기 폭스-디즈니 합병 이슈 때문에 3년 가까이 개봉이 연기됐다. 영화의 예고편이 처음 공개된 날이 2017년 10월 24일이다. 2018년 초 개봉 예정이던 영화가 2020년 3분기에 가까스로 개봉하게 되었다. 게다가 엑스맨 판권이 디즈니로 옮겨가며 <뉴 뮤턴트>는 2000년 <엑스맨>으로 시작한 ‘엑스맨 유니버스’의 13번째 개봉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호러 컨셉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조시 분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더 큐어>나 <처음 만나는 자유>처럼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호러/스릴러 영화들을 참고하고 있고, 폐쇄된 공간 안에서의 심리 스릴러라는 점에서 (당연하게도) <샤이닝>을 참조하고 있기도 하다. 얀아 테일러 조이의 전작인 <글래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원인 모를 재난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의 한 마을이 파괴되고, 유일한 생존자인 대니(블루 헌트)는 어딘지 모를 공간에서 눈을 뜬다. 어리둥절한 대니를 맞아주는 레예스 박사(앨리스 브라가)는 대니가 특별한 힘을 가진 뮤턴트임을 알려주며, 그와 같은 다른 환자들이 이 병원에 함께 있다고 이야기한다. 레인/울프스베인, 일리야나/매직(안야 테일러 조이), 샘/캐논볼(찰리 히튼), 로베르토/선스팟(헨리 자가)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 공간에 적응해가는 듯하지만, 레예스 박사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되며 상황은 급변한다. <뉴 뮤턴트>는 정신병동 호러, 심리 스릴러, 10대 성장영화를 뒤섞어 놓았다. 엑스맨 유니버스와의 연계는 자비에 영재학교와 찰스 자비에, 그리고 엑스맨에 대한 짧은 언급만으로 등장한다. 

 <뉴 뮤턴트>의 문제는 흥미로운 캐릭터들과 앞서 언급한 장르의 게임이 따로 논다는 점에 있다. 두려움을 현실화하는 대니의 능력이 등장하며 현실과 환영, 트라우마와 극복의 경계를 흐리는 호러 연출이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단 6명의 주요 인물만이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각각의 트라우마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가령, 초반의 그룹 테라피에서 레인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언급할 때 등장한 플래시백은 별 다른 효과를 보여주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이후 레인이 현실화된 트라우마를 목격하는 장면에선 앞서 등장한 플래시백과 전혀 상관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늑대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레인의 능력을 암시하는 화면이라기엔, 그가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뒤늦게 나온다. 이 플래시백이 위치해야 할 곳은 초반이 아니라 그의 트라우마가 튀어나올 때였어야 했을 것이다. 대부분이 이런 방식이다. 갑작스레 발현되는 샘의 트라우마 시퀀스는 꽤 그럴듯하지만 직전 시퀀스의 대사(“이곳이 집이야”)와 그다음 시퀀스의 대사(“여기서 나가고 싶어”)를 온전히 잇지 못한다. 게다가 모두의 트라우마는 후반부 전투 시퀀스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데,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다섯 뮤턴트 사이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과정이 대니와 레인 사이의 로맨스 외에는 많이 생략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이번 영화를 통해 데뷔한 블루 헌트와 헨리 자가의 경우,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그린스크린 연기를 수차례 경험했을 다른 세 배우에 비해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뉴 뮤턴트>들의 캐릭터들은 흥미롭다. 감정의 낙차가 가장 큰 캐릭터인 레인은, 엑스맨 유니버스의 두 번째 오픈리 퀴어 커플(첫 번째는 <데드풀2>의 네가소닉-유키오 커플)이자 천주교도인 늑대인간이다. 복합적이고 음울한 캐릭터성을 지닌 레인은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일리야나는 꾀죄죄한 외양의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굉장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때문에 <뉴 뮤턴트>의 멤버 중 가장 화려한 능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일리야나가 시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을 통해 갈 수 있는 ‘림보’의 묘사가 생각보다 적게 등장하긴 했지만, 캐릭터의 잠재성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영화를 이끄는 메인 롤인 대니의 경우 그의 능력이 발현되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이 <뉴 뮤턴트>의 줄기이기 때문에 가장 상세하게 다뤄지는 캐릭터이다. 그가 레인과 형성하는 로맨스는 영화에서 가장 엑스맨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다만 <기묘한 이야기>에서 찰리 히튼이 연기했던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샘이나, 원작에선 아프로-브라질리언이었고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선 히스패닉 배우가 연기했던 캐릭터를 화이트워싱해 재등장시킨 로베르토/선스팟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사실 엑스맨 유니버스의 오랜 팬으로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뉴 뮤턴트>로 인해 다시금 엑스맨 유니버스의 타임라인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점이다. 극 중 대니의 능력을 실험하는 례예스 박사는 대니의 능력으로 인해 자신의 기억을 보게 된다. 그 기억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로건>에서 도널드 피어스가 운영하던 에섹스 주식회사의 뮤턴트 실험시설을 로라의 보호자인 가브리엘라가 몰래 찍은 푸티지이다. <로건>에 등장한 그 푸티지를 고스란히 사용했다. <로건>의 작중 시간대는 2029년이며, 그 시점에선 치매에 걸린 찰스 자비에가 사고를 일으켜 엑스맨이 해체된 이후이다. 레예스의 기억 속에 <로건>의 푸티지가 존재한다면 <뉴 뮤턴트>의 작중 시간대는 2029년 직전이나 그 이후일 텐데, 극 중에 등장하는 아이패드는 2020년과 동시대의 것이며 찰스 자비에나 엑스맨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등장한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처음 등장한 에섹스 주식회사에 대한 떡밥을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로건>에서 등장한 청소년 뮤턴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뉴 뮤턴트>의 다섯 캐릭터의 위치를 설명하는 가장 게으른 방법으로 이를 택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난장판이 된 타임라인이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이벤트로 정리된 이후 그에 발맞춰 전개되던 (그리고 더 이상 나오지 못할) 엑스맨 영화들의 노력(?)이 마지막 영화로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아쉽다. 


*번역 중 거슬렸던 부분이 몇 있는데, 작중 세계관에서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뮤턴트를 ‘돌연변이’로 번역하는 잘못 자리 잡은 관행은 둘째 치더라도, ‘Psionic Energy’를 초자연적 에너지로 번역하거나 사이오닉 에너지로 음차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영적 에너지’라는 해괴한 단어로 번역한 것이 너무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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