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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7. 2020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미례 2019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1974년과 1975년에 걸쳐 미쓰비시중공업, 미쓰이물산, 대성건설, 가지마건설, 하자마구미 등의 공장, 창고, 본사 등을 폭탄으로 공격했다. 늑대, 대지의 엄니, 전갈이라는 이름의 세 부대로 구성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전범기업들이 전후에도 동아시아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해 경제적 식민주의를 이어가고 있음을 지적하며 폭파를 감행했다. 김미례 감독은 2005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노가다>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일용직노동자운동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며 국가의 폭력성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번 영화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기본적인 형식은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김미례 감독이 만날 수 있는 이는 ‘대지의 엄니’ 부대의 에키타 유키코, ‘전갈’ 부대의 우가진 히사이치 뿐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죽거나 일본을 떠나 실종 상태이거나, 수감 중이라 면회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중 ‘늑대’ 부대의 다이도지 마사시는 수감 중이었으나 결국 옥사하여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다. 김미례 감독은 다이도지의 모습과 목소리를 직접 담아내는 대신 그가 쓴 옥중서한을 인용한다. “저는 1948년 홋카이도 구시로에서 태어난 일본인입니다. 본래 그곳은 아이누모시리죠. 즉 저는 아이누모시리를 침략한 식민자의 후예입니다.”라며 시작되는 다이도지의 서한은 자신이 태생적으로 식민자의 후손임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늑대 부대가 미쓰비시중공업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침략과 학살을 자행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자기비판은커녕, 여전히 동아시아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식민화하고 침략을 반복하는 70년대 일본의 당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다시 말해, 다이도지를 비롯해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인 이들의 정치철학은 식민자의 몸을 타고난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의 자기비판은 폭력을 사용한 자신들의 무장투쟁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다이도지의 옥중서한과 하이쿠, 김미례 감독이 직접 인터뷰한 에키타 유키코와 우가진 히사이치의 인터뷰는 안개 낀 현재 일본의 풍경과 중첩된다. 삶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이들의 시간과 국민국가 일본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다이도지 지하루처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지원했던 이들의 시간 또한 부대 멤버나 국가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에서 비국민은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다시금 국민으로 호명되지 못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멤버들의 시계는 다르게 흘러간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시계는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낸 70년대부터 버블이 붕괴되던 90년대, 우경화되어가는 202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흘러왔지만, 비국민으로 낙인찍힌 국민의 시간은 감옥에 갇혀버린다. 물론 김미례 감독이 이들의 낙인을 지우고 국민으로의 복권을 돕기 위해 영화를 찍은 것은 아니다. 이들이 스스로 비판해온 것처럼 이들은 살인을 저질렀고, 무장투쟁의 몇몇 과정에선 민간인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때문에 영화는 이들이 수행하는 자기비판의 핵심인 ‘가해자성’과 이들이 진행해온 투쟁의 목표인 ‘반일’의 의미 확장에 주목한다. 가해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민족주의적 의미를 벗어난 반일은 어디로 확장될 수 있는가? 일본의 일용직노동자운동에서 영화가 출발했음을 밝히는 김미례 감독은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진 못하더라도 실마리는 될 수 있는 지점을 넌지시 보여준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김미례 감독과 함께 활동해온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의 글(http://ildaro.com/8817)을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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