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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24. 2020

<도망친 여자> 홍상수 2019

 영화 내에서 챕터를 나누지는 않지만, <도망친 여자>는 명확한 3부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감희가 남편이 출장을 떠난 사이 영순(서영화),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각기 만나러 가는 것이 각 부분의 이야기를 채운다. 만희와 그들의 대화도 어느 정도 반복된다. 결혼한지 5년 정도 되었지만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이 처음이라는 감희의 말에 놀라는 상대방의 반응, 북한산과 인왕산의 이미지를 통해 연결되는 각 부분, 얼굴 대신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세 남성 – 고양이 남자(신석호), 젊은 시인(하성국), 정선생(권해효) – 의 어딘가 불편한 목소리, 다양한 스크린을 응시하는 감희의 눈. 이 세 이야기는 서로의 순서를 바꿔도 내용 상의 문제는 없다. 감희가 이들 중에 누군가를 먼저 찾아갔다기보단, 이들을 동시에 찾아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때문에 외적으로는 반복되는 시간들을 다루는 홍상수의 근작들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의 영화에서 남성의 출현이 가장 배제된 영화라는 점에서 독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도망친 여자>를 보고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더 간결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대사들에서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과거 홍상수 영화들 속 여성들의 대사가 “좋아요”, “아름다워요” 등의 반복이 잦았다면, <강변호텔> 즈음부터 여성과 여성의 대화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묻는 것에 대한 대답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반면 남성과 남성이 나누는 대사, 혹은 여성과 남성이 나누는 대사들을 생각해보자. <강변호텔>에서 시인 영환의 말을 두 아들은 단박에 알아채지도 못하고, 서로가 있는 위치를 찾는 것부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영환을 부르는 두 아들의 말은 영환에게 쉬이 전달되지 못한다. <도망친 여자>에서 남성들의 뒷모습은 불편함을 내비친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영순이 불편하고,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는 수영이 불편하고, 감희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이 불편하다. 감희와 여성 친구들 사이의 대화는 자신이 이미 목격한 것을 부정하면서라도 대화의 맥을 이어간다. 반면 여성과 남성의 대화는 대답이 되지 못할 것, 네댓 문장의 텀을 둔 애매한 대답, 약간의 쌍욕으로 구성된다. 여성들은 서로에게 관대하고, 남성에게는 그렇지 않다. 홍상수는 영순과 그의 동거인 영지(이은미)가 밥을 주는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 부르며 밥을 주지 말 것을 요구하는 이웃집 남성의 몸이 프레임 밖으로 잘려나가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고양이를 화면에 안정적으로 배치하려 한다. <도망친 여자>의 프레임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이들은 여성, 고양이, 닭, 까마귀, 산이다. 

 그렇다고 홍상수가 여성연대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거나, 생태주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감희와 영순이 소고기를 먹으며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긴 한다) 주목해볼 것은 스크린을 보는 감희다. 그는 영순이 이웃집의 젊은 여성과 담배를 피우며 위로해주는 장면을 CCTV 화면을 통해 본다. 그는 수영이 스토커 같은 젊은 시인과 싸우는 모습을 현관 초인종 화면으로 본다. 그리고 극장 스크린에서 흑백의 바다를 본 그는 우진 및 정선생과의 대화 이후 다시 극장으로 가 컬러 화면의 바다를 본다. 앞선 두 번에서 감희는 갈등과 불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인 위치에서 위로와 불화를 목격하고 응시한다. 그는 영순과 옆집 여성의 모습에서 위로를 배운 것처럼, 싸우고 돌아온 수영에게 힘내라며 위로를 건내기도 한다. 반면 정선생과 대화를 나눈 뒤 극장 밖으로 나온 감희는 다시 극장으로 들어가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바다를 본다. 여기서의 바다는 홍상수의 영화들(<생활의 발견>부터 <강변호텔>에 이르는)에 등장했던 바다 혹은 물가와는 다르다. 감희는 그곳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것을 직접 보지도 못한다. <도망친 여자> 그의 시점숏을 채우는 것은 바다나 강가가 아니라 산이다. 산은 움직이지 않지만, 바다는 움직인다. 산이 감희나 다른 여성, 자연물처럼 자신의 위치를 점거하고 있는 존재라면, 바다는 물러났다 들이치길 반복한다. 스크린에 영사되는 바다에 대해 감희는 “평화롭다”고 말한다. 바다는 역동하지만 산은 멈춰 있다. 감희는 바다와 조응하는 대신 스크린 속 바다를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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