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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06. 2020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2020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 소희(이정현)는 야근이 잦은 남편 만길(김성오)이 의심스럽다. 그가 하루 24시간 중 21시간을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스터리 연구소 소장 닥터 장(양동근)에게 도움을 청한다. 닥터 장은 만길이 소희를 죽이려 하는 외계인 ‘언브레이커블’임을 확신한다. 이들은 소희의 고교 동창인 세라(서영희), 우연히 합류하게 된 양선(이미도)과 함께 만길을 미리 죽일 계획을 세운다. <시실리 2km>, <차우> 등 개성 넘치는 코미디 영화를 연출해온 신정원 감독의 신작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우주에서 한 외계인이 지구에 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간 스릴러와 괴수영화, 오컬트 등의 장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온 감독답게, 이번 영화 또한 SF에 기반을 두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사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 끌어오는 레퍼런스들은 너무나도 명확해서 종종 유치해 보이기도 한다. 조지 로메로의 영화에서 따온 제목(영어제목은 ‘Night of The Undead’)부터, M. 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에서 따온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설정, <맨 오브 스틸> 중반부의 액션 시퀀스를 거의 고스란히 따온 듯한 후반부의 액션, 히치콕 영화 속 운전 장면을 연상시키는 장면 등등. 신정원 감독의 전작들은 항상 큰 줄기는 영화가 지향하는 장르 컨벤션에 맞춰져 있되, 그것을 2000년대 초반의 한국적 정서로 조금씩 비틀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침드라마와 같은 소희와 만길의 일상이라던가, 한국 드라마의 과도한 PPL를 패러디하듯 각종 PPL 상품(으로 보이는 것들)으로 도배된 이들의 집, 서울 곳곳을 묘사하지만 정작 그 동네의 외형은 20여 년 전의 모습처럼 보이는 공간감(마장동 주유소의 묘사) 등등. “가위를 내면 지는 가위바위보”에서 굳이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가위를 만들어 내게 하는 당황스러움이 이 영화의 코미디이다. 이쯤 되면 줄거리나 SF적 설정은 맥거핀이고, 황당함을 주는 순간들이 이 영화의 중심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 주는 황당함이 불쾌하거나 지루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정원 감독은 영화의 주된 서사와 유리된 황당함을 장치로 사용하는 데 능숙하다. 감독의 전작인 <차우>를 떠올려보자. 영화의 코미디적 장치들은 <죠스>를 베껴온 영화의 큰 줄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몇몇 코미디는 서사를 지연시키고 러닝타임을 불필요하게 늘린다. 그럼에도 이들은 영화 속에 담겨 있고, 관객들을 웃긴다. 교훈을 주는 대신 관객들을 반응하게 영화를 의도한 것이라면, 신정원 감독의 영화들은 대체로 그것에 성공한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관객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할만한 장면들을 잔뜩 집어넣었다. 이정현, 양동근, 이미도, 서영희의 과장된 연기와, 이제는 한국 장르영화에서 빼놓기 어려운 얼굴처럼 느껴지는 김성오의 모습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일 뿐이다. 후반부 경찰서 시퀀스를 떠올려보자. 이 시퀀스가 10분 넘게 지속될 이유는 없다. 유일한 이유라면 소희, 양선, 세라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두고 만길 및 닥터 장과 다시 마주치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해야 되니까 그렇게 한다. 사건은 이야기에 복무하는 대신 황당한 순간, 코미디의 순간에 복무한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성공은 아니다. 작중 인물 중 이야기에 복무하는 캐릭터들인 비밀요원 집단은 그 흐름을 끊는다. 터미네이터 마냥 달려오는 ‘언브레이커블’이 산속의 식인 멧돼지나 조폭들을 따라오는 소녀 귀신만큼은 인상적이지 못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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