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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06. 2020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커스틴 존슨 2020

*스포일러 포함


 “Dick Johnson Is Dead”라는 문장과 함께 죽은 노인의 시체가 화면에 등장한다. 그런데 시체가 일어난다. 이 순간은 죽음을 앞둔 노년 남성 딕 존슨이 자신의 죽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리허설해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담은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20여 년 동안 여러 다큐멘터리의 촬영감독으로 일해왔고, 2016년 <카메라를 든 사람>을 통해 연출자로서도 성공한 커스틴 존슨의 신작이다. 이 영화에서 딕 존슨은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다. 심장마비, 누군가가 떨어트린 모니터에 맞기, 공사장 인부가 휘두른 자재에 맞아 피 흘리기,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 자전거에서 떨어지기… 어느 것 하나 편한 죽음이 없다. 스턴트맨이 대리하는 딕 존슨의 다양한 죽음을 딕 존슨은 지켜본다. 그리고 스턴트맨이 쓰러진 자리에 딕 존슨은 눕는다. 부녀는 딕 존슨의 가짜 장례식을 열고 딕의 친구에게 추도사를 읊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부녀는 장례식이 열린 교회 강당의 문 밖에서 그 상황을 보고 웃고 있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장르적 분류는 논픽션 다큐멘터리지만, ‘딕 존슨의 죽음’이라는 상황은 픽션이다. 물론 누구나 죽는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딕 존슨의 죽음’이라는 상황은 언젠가 실현될 상황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안에서 딕 존슨은 죽지 않는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넷플릭스에 영화가 업데이트된 10월 2일까지 딕 존슨은 죽지 않았다. 이 영화는 여전히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픽션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영화의 주인공인 딕 존슨이 영화의 마지막 즈음엔 정말로 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숏은 커스틴 존슨 감독이 어느 벽장에서 “딕 존슨은 죽었습니다”라는 문장을 연습하듯 읽는 장면이다. 감독은 벽장문이 열리고 환한 빛과 함께 나타난 아버지를 끌어안고,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소리 내어 말하기도 어려운 그 문장을 다양한 영화적 트릭을 통해 미리 예습하는, 죽음을 연습하는 작품이다.

 죽음은 누구나 단 한 번 겪는다. 누구든 자신의 죽음이 어떤 형태일지, 죽은 후의 모습이 어떨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연출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죽음들은 수많은 거짓들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그 상황 자체를 연습할 수는 없다. 죽음의 리허설이 반복될수록 딕 존슨은 그것을 실제처럼 받아들인다. 목의 대동맥이 베여 죽는 상황을 연출할 때, 그는 몸을 뒤덮은 가짜 피가 축축하고 싫다고 말한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신체가 느꼈어야 할 감각을 느끼지 못하지만, 죽음을 연기하는 사람은 그 연출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이라는 상황과 감각에 다가갈 수는 없지만, 수 차례 반복되는 리허설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죽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서 기억에 남는 시퀀스는 딕 존슨이 천국에 갔을 때의 풍경을 연출한 시퀀스이다. 몇 차례 등장하는 천국 시퀀스에서 딕 존슨은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진으로만 등장하기도 한다. 사진으로 등장한 딕 존슨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과 춤을 춘다. 천국에 도착한 죽은 딕 존슨은 아내의 사진은 물론, 버스터 키튼이나 이소룡 등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과 함께 자리한다. 물론 딕 존슨은 영화인이 아니다. 그의 직업은 심리 상담사이고, 알츠하이머의 발병으로 그는 은퇴했다. 죽음은 이미 죽은 이들과의 만남인가? 커스틴 존슨의 내레이션에서, 딕 존슨은 술, 춤, 영화를 금지하는 안식교의 규율을 거부하고 자녀와 <영 프랑켄슈타인>을 보러 갔었다며, 그에게 천국은 아이들과 함께 이 땅에 있는 것이라 언급된다. 연출된 천국은 아마도 딕 존슨의 천국은 아닐 것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천국의 모습에서 딕 존슨의 의견이 얼마나 들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천국의 모습이 등장한 직후, 그리고 천국뿐 아니라 수많은 연출된 죽음과 가짜 장례식이 등장한 직후 그것이 모두 연출된 상황임을 알려주는 세트, 카메라, 스턴트맨, 분장사 등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 영화의 모든 순간에는 죽음의 징후가 감지된다. 죽음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영화가 촬영되는 기간 중 어느 때라도 딕 존슨은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에 저항하는 일종의 놀이로 변화된다. 그것은 종종 실제적인 감각을 동반하며 섬찟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차마 입 밖으로 내놓기 어려운 말의 반복일 수도 있다. 딕 존슨의 가짜 죽음에 진심으로 추도사를 읊으며 눈물을 흘리는 친구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것은 항상 포옹과 웃음을 동반한다. 사랑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불가능한 말을 영화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충격 앞에서 감독 자신과 관객에게 일종의 예방접종과 같은 충격효과를 노리는 것일 수는 있다. 죽음 앞에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말 앞에서, 존슨 부녀는 놀고 있다. 죽음이라고 명명된 죽음이 아닌 상황들로 이들은 유희를 벌인다. 딕 존슨은 항상 같은 의자에 앉아 웃고 있다. 그는 연출된 자신의 죽음을 보며, 자신의 천국이 그려진 세트를 보며 웃는다. 이 웃음이야말로 딕 존슨이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라는 무거운 문장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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