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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09. 2020

<해수의 아이> 와타나베 아유무 2019

 어렸을 적 수족관에 갔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중학생 루카(아시다 미나)는 핸드볼 여름방학 훈련에서 제외된다. 따로 떨어져 사는 아빠는 물론 함께 사는 엄마도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찾은 수족관에서 듀공과 함께 자랐다는 바다소년 우미(이시바시 히이로)와 소라(우라가미 세이슈)를 만난다. 이들은 해양학자들과 함께 고래의 노래가 암시하는 바다 생태계의 ‘탄생제’를 쫓고 있다. 루카는 우미와 소라 형제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이들과 함께 어울리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의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해수의 아이>는 <마인드 게임>, <철콘 근크리트>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 4℃가 제작했고, <도라에몽>의 몇몇 극장판과 <우주형제>의 TVA를 이끈 와타나베 아유무가 연출을 맡았다.

 <해수의 아이>는 상당히 도전적인 프로젝트다. 루카와 바다소년들의 만남은 어딘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나 유아사 마사아키의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와 같은 앞선 애니메이션들을 연상시키고, 환경과 자연이라는 표면적인 주제나 바다와 항구마을이라는 배경에서도 유사하다. 하지만 <해수의 아이>는 차라리 조너선 글레이저의 실험적인 작품들이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테렌스 멜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 혹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같은 작품들과 비교하는 게 더욱 타당할지도 모른다. 영화 후반부를 통째로 할애한 ‘탄생제’ 시퀀스는 방금 언급한 영화들의 추상적이고 코스믹한 장면들과 닮아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활달하지만 누군가의 앞에서는 소심한 루카는 세상에 자신의 말을 잘 내뱉지 못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얼핏 그런 그가 두 바다소년과 만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과정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와 같은 우주론적인 질문들과 결합되어 거대하고 추상적인 세계로 돌입한다. 일본어로 각각 바다와 하늘이라는 뜻의 우미와 소라의 이름은 바다와 하늘(우주)이 뒤섞일 후반부에 대한 복선이다.

 루카와 바다소년들의 여정은 우미가 루카에게 도깨비불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깨비불은 어떤 운석이었고, 그 운석은 생명의 씨앗으로써 바다의 탄생제가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영화 중반부 이에 대한 설명이 짤막하게 나온다. 바다가 자궁이고 운석이 하늘의 정자라는 식의 설명은, 대지를 모성에 비유하는 관념의 변형이다. 다시 말해, 우주는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공간이며 그것의 대응물과 같은 바다 또한 인간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생명의 모태라는 것이 <해수의 아이>의 기반이다. 때문에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나 철학 자체는,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서 이미 다뤄진 것이기도 하며, 딱히 새로운 구석은 없다. 그럼에도 <해수의 아이>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애니메이션이기에 조금 더 용이한 추상적 화면을 화려하게 구현해낸다. 굳이 후반부의 ‘탄생제’ 시퀀스를 언급하지 않아도, 바다를 그리는 방식이나 정지된 육지 및 다른 캐릭터들과 역동하는 바다 및 세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이미 화려하고 주제에 걸맞은 작화를 선보인다. 

 여담이지만, <해수의 아이>를 비롯해 신카이 마코토의 최근 두 작품,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등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눈에 띄는 작품들이 액체적 속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 선봉장에는 <모노노케 히메>에서 보여준 사슴신의 피부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 <벼랑 위의 포뇨>의 바다까지 이어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있지만, 이 영향을 짙게 받은 이들의 작품이 곳곳에서 바다, 비, 호수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키라>와 <공각기동대>부터 <에반게리온>까지가 유기체적인 기계들의 향연과 함께 철학적 테마를 선보였다면, 언급한 최근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생태주의, 세카이계로 포섭되는 포스트-재난 서사, 주체-객체 사이 모종의 동기화 등을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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