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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09. 2020

<어디갔어, 버나뎃>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9

 최연소로 맥아더상을 수상했으며, 남초인 건축업계의 몇 안 되는 여성으로 이름을 알리던 천재 건축가 버나뎃(케이트 블란쳇)은 북미지역 건축의 메카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시애틀에서 살고 있다. 20년 간 새로운 작업을 하지 못한 채 딸 비(엠마 넬슨),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남편 엘지(빌리 크루덥)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항상 신경을 긁는 옆집의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와 대립하고 있기도 하다. 버나뎃은 자신을 돌보는 일보다 딸을 먼저 생각하고, 오랜 기간 작업을 하지 못하게 된 사건의 트라우마 덕에 대인기피증과 편집증에 가까운 상태에 놓였으며, 집에 필요한 도구들도 델리에 위치한 온라인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통해 해결한다. 그러던 중 딸의 소원인 남극 여행을 함께 가기로 하고, 여행에 대한 불안으로 시작된 스트레스와 여러 사건 때문에 점점 일이 꼬인다. 버나뎃은 결국 가출을 택한다. 마리아 샘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디갔어, 버나뎃>은 <보이후드>, <스쿨 오브 락>의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했다.

 링클레이터의 전작 중 굳이 두 편을 언급한 것은, 그가 지금까지 연출해온 영화들을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슬래커>부터 <멍하고 혼돈스러운>, <비포> 3부작, <보이후드>, <에브리바디 원츠 썸!!>까지 일정한 기간 안의 시간을 두고 변화하는 육체와 감정을 쫓는 작품들, 그리고 <스쿨 오브 락>, <배드 뉴스 베어즈>, <버니>, <라스트 플래그 플라잉>처럼 코미디를 겸비한 박스오피스를 겨냥한 듯한 ‘할리우드’ 영화들. 물론 서른 편이 넘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양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대부분의 연출작을 직접 제작하고 각본을 썼다는 점에서 이 구분은 거의 무용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구분해보는 것은, <어디갔어, 버나뎃>이 전형적이며 딱히 모난 데 없는 영화라는 점 때문이다. 

 <어디갔어, 버나뎃>은 매끄럽다. 감정적, 정신적 고저를 온몸으로 소화하는 케이트 블란쳇의 원맨쇼는 물론, 빌리 크루덥이나 크리스틴 위그 같은 중견 배우들, 이번이 첫 장편영화인 엠마 넬슨이나 짧지만 중후한 연기를 선보이는 로렌스 피시번 등 배우들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남극은 아니지만 그린란드의 극지방에서 촬영한 남극 장면, 딱히 흠잡을 데 없는 각본과 리듬감도 적당한 즐거움도 준다. 어떤 의미에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정서를 반대의 방식으로 풀어낸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멈춘다. 버나뎃이 겪는 사건들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FBI까지 동원되지만 극을 즐겁게 전개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고, 배우들의 연기가 흥미롭게 맞붙는 장면들도 있지만 다소 관성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때문에 이 영화는 결국 특별한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 익숙하고 평범하지만 2시간이 아깝진 않은, ‘힐링’이나 ‘자기 계발’ 같은 키워드에 열광할 이들이 좋아할 만한, 적당한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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