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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1. 2020

2020-09-11

1. 영자원 KMDB VOD에서 '아카이빙 101' 상설전(https://www.kmdb.or.kr/vod/plan/557)을 시작했고, 첫 타자는 빌 모리슨의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과 톰 앤더슨의 <로스엔젤레스 자화상>이다. <도슨 시티>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자 걸작이라 생각하는데, 이번 기회에 처음 본 <로스엔젤레스 자화상> 또한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톰 앤더슨은 로스엔젤레스에 산다. 로스엔젤레스 곳곳의 거리에서는 영화 촬영이 진행중이며, 스태프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임시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이곳이 어떤 영화의 촬영장이었음을 알려주는 가게 간판이나 기념비, 수많은 배우나 감독의 이름을 딴 도로와 공원, 그리고 명예의 거리 등은 이곳이 '할리우드'가 있는 곳임을 알려준다. 동시에 그곳은 "영화 촬영 문의는 여기로"와 "영화 촬영을 거부합니다"라는 푯말이 곳곳에 붙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톰 앤더스는 할리우드 시스템이 자리잡던 시기인 1920년대부터 <로스엔젤레스 자화상>이 제작된 2003년까지 개봉한 200여편의 영화와 TV영상, 그것들의 비하인드 영상에서 추출한 푸티지를 통해 로스엔젤레스의 이중화된 재현을 담아낸다. 그곳은 영화가 촬영되는 곳이자 촬영이 거부되는 곳이고, 로스엔젤레스이자 LA인 곳이고, 영화사가 있다고 여겨지는 할리우드지만 실제로는 없는 곳이고, 배경이면서 캐릭터인 곳이며,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나 제대로 찍을 수 없는 곳이다. 톰 앤더슨은 영화들이 곧장 재현하지 않는 도시의 인종주의, 계급 이슈, 미국의 교외, 건축 디자이너의 건축물 등에 주목한다. 그것들은 분명 영화 속에 등장하지만 제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톰 앤더슨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쫓고 푸티지로 구성된 차원을 통해 파헤친다. 로스엔젤레스는 그렇게 배경에서 캐릭터가 된다. 수많은 영화와 TV쇼를 오가며 샌프란시스코와 히치콕의 <현기증>을 재현한 가이 매든과 존슨 형제의 <녹색 안개>가 도시의 픽션화를, 우연히 발굴된 푸티지와 사진들을 통해 북미 영화사(史)를 축조하는 <도슨 시티>가 역사화의 전략을 택한다면, <로스엔젤레스 자화상>은 인물화라는 방식을 통해 유기체적인 기념비를 세운다. 


2. <로스엔젤레스 자화상>을 보는 내내 오디오-비주얼 크리틱/비디오 에세이 유튜브 채널인 "Every Frame a Painting"의 비디오 에세이 <Vancouver Never Plays Itself>를 떠올렸다. <로스엔젤레스 자화상>의 원제인 "Los Angeles Plays Itself"의 제목을 패러디한 이 에세이에서, Taylor Ramos와 Tony Zhou는 이민자의 자식으로써 자신들이 발로 걸어다녔던 벤쿠버라는 도시가, 영화와 TV쇼 속에서 벤쿠버로 재현되지 못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벤쿠버는 근미래의 시애틀이기도, 핵발전소가 폭발한 일본이기도, 상하이, 방콕, 뭄바이 같은 아시아의 도시이기도,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카고, 로스엔젤레스이기도, DC 코믹스 속 스타시티이기도하다. <디 인터뷰>에서 벤쿠버는 평양이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독특한 외양의 대학 건물은 대학으로 등장하지 못한 채, 악덕 기업, 군사기지, 정부의 비밀기관, 심지어벤쿠버의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을 연기한다. 이들은 벤쿠버가 "이상하게 친숙한 성격파 배우"같다고 말한다. 이 에세이는 그린스크린, 벤쿠버가 연기하는 도시의 전경을 담은 인서트 숏, 지명이 담긴 자막, 풍경을 뒤바꾸는 CG, 건물을 뒤바꾸는 앵글 등으로 가려진 벤쿠버의 흔적을 찾는 탐정과 같다. 마치 수도권 주민들이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서울 장면이 얼기설기 붙여 놓은 서울과 의왕시 곳곳의 지리적 오류를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벤쿠버가 벤쿠버로 재현되는 것은 지역 영화인들이 제작한, 널리 배급되지 못하는 작은 영화들이다. 에세이의 두 제작자는 그곳에서 미약한 희망을 발견한다. 10분이 채 안 되는 짧막한 비디오 에세이는 지역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재고하도록 하고, 영화가 어떤 지역을 재현한다는 것이 어떤 문제인가에 대한 고민을 들려준다. 물론 에세이에서 수차례 언급되는 것처럼, 그곳이 벤쿠버로 재현되는 말든 벤쿠버는 북미에서 3번째로 큰 영화 도시다. 지역 영화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 토양이 그곳엔 있다. 언젠가 벤쿠버의 <콜럼버스> 같은 영화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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