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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7. 2020

2020-09-17

1. 작년엔 학기 중이라 포기했던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올해는 다녀왔다. 예매 날 일반관객 예매가 취소되면서 짜놓은 시간표가 필요없어지나 했는데, 다행히 다큐패스를 발급받아 영화제 첫 날인 오늘 3편의 영화를 보고 왔다. 하필 디아스포라영화제, 씨네큐브 홍상수 기획전이랑 일정이 완벽히 겹쳐버려서 아쉽다. 아래는 오늘 본 영화들의 짧은 감상

<카니발리즘의 시대> 테보호 에드킨스 2020

사실 영화제 홈페이지에 게재된 감독 프로필 사진을 보고 또 제1세계 백인 남성 감독이 아프리카 가서 헛짓거리를 했겠거니...했는데, 영화가 처음 공개된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남아프리카의 소국 레소토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랐으며, 현재 거주지도 케이프타운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은 중국의 어느 호텔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이들이 장기투숙하는 이 호텔은 아프리카로 향하는 여러 물품들이 도매로 묶여 배송되는 것이다. 어떤 설명도 없이 영화는 레소토로 배경을 옮겨간다. 'Lesotho'라는 자막도 없이 제시되는 황야가 저 멀리까지 펼쳐진 레소토의 풍경은, 얼핏 중국의 서쪽 내륙지방에 거주하는 흑인 공동체를 다루는 영화인가라는 착각을 줄 정도로 유사한 인상을 풍긴다. 레소토의 사람들은 소를 중요시 여긴다. 인도의 힌두교도처럼 소를 신으로 모시는 것은 아니지만, 소는 이들의 주된 재산이자 삶의 동반자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소의 소유주는 레소토에 거주하는 소토족이 아니다. 소유주는 중국인이다. 중국인은 레소토 곳곳에 들어와 살고 있다. 레소토의 첫 도매상점을 개점한 것도 중국인이고, 인근 지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이들도 중국인이다. 영화를 보며 자연스레 <언컷 젬스>의 오프닝을 떠올렸다. 에티오피아 광산에서 고된 노동에 한 노동자가 큰 부상을 당하자 동료 노동자들이 관리자에게 격렬하게 항의한다. 관리자는 중국인이다. <언컷 젬스>는 거짓말로 축조된 픽션의 세계를 다루지만, 곳곳에 현실 세계의 짙은 흔적을 남긴다. 테보호 에드킨스는 <언컷 젬스>의 질료가 되는 현실 세계, 그가 자란 레소토의 현재를 담아낸다. 라디오를 진행하는 DJ는 중국인이 레소토의 문화를 배우고 소토족처럼 소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하며 화합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어떤 중국인은 시장경제체제가 그 어느 때보다 성행하는 중국에 사는 것보다 레소토에 사는 것이 돈이 안 들고 편안하다며 그곳에 머무르려 한다. 아쉽게도 영화의 카메라는 공장을 운영하는 중국인이나 소들을 소유한 중국인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가게를 운영하고 소를 치며 살아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 후반부 레소토의 주민들이 중국인이 운영하는 도매상점에 난입해 강도질을 벌이는 CCTV 화면이 등장한다. 분홍색 패딩을 입은 상점 주인의 어린 딸은, 마치 <쉰들러 리스트>의 붉은 코트를 입은 소녀처럼 채도가 낮은 화면 위에서 부각된다. 이 소녀는 희망인가 동기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그저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형상인가. 영화의 마지막 숏은 소가 황야에 널린 소의 유해를 먹는 장면이다. 세계화, 국제화라는 이름은 무엇을 먹는가?

<코피 터지고, 돈 떨어지고> 빌 로스 4세, 터너 로스 2020

영화는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칵테일 바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를 배경으로, 폐점을 앞둔 바의 마지막 영업일에 그곳을 찾은 단골 손님들이 파티를 벌이는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경까지를 다룬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의 등장하는 바는 폐점하지 않았을 뿐더라 라스베가스가 아닌 뉴올리언스에 위치해 있고, 등장한 이들은 모두 본인으로 출연하긴 했으나 이 영화에선 연기를 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감독인 로스 형제의 인터뷰를 참고하길. 즉, <코피 터지고, 돈 떨어지고>는 바의 폐점 파티를 찾은 단골 손님들이라는 픽션을 제시하고, 20여명의 자신을 연기하는 이들이 바의 어둡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혼란스럽게 뱉어내는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2016년 말이며,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이다. 참전용사인 흑인, 아내를 읽은 노년 남성과 아들을 잃은 노년 여성, 케이티 페리의 'Teenage Dream' 티셔츠를 입고 포스트 말론처럼 타투를 한 뮤지션, 한 때 배우였으나 이제는 바의 소파를 침대 삼고 있는 남성, 쇼 비즈니스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흑인 트랜스여성, 호주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호주인, 젊고 혈기왕성한 30대 흑인과 백인 콤비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마이클 잭슨부터 에이셉 라키까지 다양한 음악들에 맞춰 춤을 추고, 트라우마와도 같은 자신의 과거를 술기운에 털어내기도 하며, 문을 닫게 된 바에 대한 시를 써 읊기도 한다. 시시껄렁한 농담, 어두운 과거, 새로운 만남과 우정, 그리고 애정 등이 칵테일처럼 뒤섞인다. 영화의 형식이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뒤섞임이라면, 영화의 내용은 알코올과 엑스터시의 뒤섞임과 같다.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확정적인 미래 직전에 놓인 이들의 말과 행동은 아직 불확실성 속에 놓인 미래를 두려워하며 과거의 트라우마, 후회, 추억 등을 숙취와 뒤섞는다.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밝고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야 할 불꽃놀이 장면은 CCTV화면을 통해 제시된다. 저화질의 CCTV 화면은 형형색색의 불꽃과 스파클러를 검은 테두리를 지닌 흰 색의 픽셀 덩어리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이내 모두가 불꽃놀이를 보러 나간 사이 바에 홀로 남은 전직 배우를 비춘다. CCTV화면이 지나가자 등장하는 것은 누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땅바닥에 처박힌 케이크와 불꽃놀이가 남긴 연기 뿐이다. 

<피스> 소다 카즈히로 2010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 POV 기획전을 통해 드디어 소다 카즈히로의 영화를 접했다. 몇 년 전 대구사회복지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와 오큘로에 올라온 글을 읽고 한참을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앞으로 <선거>와 <항구마을>도 관람 예정. 카즈히로의 책 [나는 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가?]에 따르면, <피스>는 그가 자신의 장인인 카시와기 토시오와 그의 고양이들을 촬영하며 시작되었다. 토시오는 아내 히로코와 함께 '깃치코'라는 유상복지서비스를 운영 중이었으며, <피스>는 카시와기 부부와 그들의 고양이, 그리고 이들이 대하는 환자들을 담아낸다. 다만 카시와기 부부가 카즈히로의 장인장모라는 사실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토시오를 보여주고, 토시오가 환자를 태워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주는 운송 서비스의 과정을 보여준 뒤, 길거리의 사람들을 담아낸다. 길거리의 사람들을 담아내는 숏들은 이렇다. 환자의 휠체어를 끄는 토시오, 유모차의 아기, 자전거에 탄 흑인, 동반인의 도움을 받아 길을 건너는 시각장애인,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 다시 말해서, 우리가 소위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행인'의 정체성을 지녔을 때의 모습이다. 이와 유사한 몽타주는 토시오의 고양이들로부터 시작된다. 카메라는 강가의 새, 바위 위의 거북이, 줄지어 헤엄치는 오리, 강가의 꽃, 공원의 나무 등을 담는다. 이러한 몽타주에서 사람들과 여러 동식물들은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이 몽타주는 영화의 제목처럼 평화롭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에서 'PEACE'라는 단어는 카시와기 부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폐암 환자 하시모토 씨의 담배갑에서만 발견된다. 카즈히로는 그것이 중요한 오브제인 양 수차례 클로즈업해 촬영한다. '피스'는 하시모토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동시에 그의 삶의 몇 남지 않은 낙으로써 그를 살게 한다. 2차대전 당시 군인이었던 그는 "남자 목숨은 1.5전"이라 교육받은 세대이지만 1.5전보다 비싼 '피스' 담배를 피우며 아흔이 가까운 나이까지 살아내고 있다. 카시와기 부부와 하시모토 씨 외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도둑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토시오가 자신의 고양이들에게 준 밥을 훔쳐 먹는다. 토시오는 기르는 고양이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도둑고양이를 먹이로 유인해 다른 고양이들과 떼어 놓는다. 하지만 영화는 도둑고양이가 결국 다른 고양이들과 무리짓게 되는 모습을 담아내며 끝난다. 토시오는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집을 떠난다고 말한다. 때문에 20년 동안 그의 집에는 항상 네댓 마리의 고양이만이 있다. 고양이들의 자발적인 순환과 공존은 일본이라는 국민국가 내에서 목숨값으로 존재하는 하시모토 씨의 과거와 대비된다. 카시와기 부부는 값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이들이다. 사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앞서 언급한 몽타주도, 고양이들의 등장이나 '피스'의 클로즈업도 아니다. 영화 초반, 토시오는 운송 서비스를 맡은 사람과 함께 신발을 사러 간다. 그를 데리러 그의 집에 온 토시오는 정원을 잘 꾸몄다고 말한다. 그를 다시 집에 데려다 준 토시오는 집을 나서며 잘 꾸며진 정원을 유유히 살펴본다. 카즈히로는 가만히 서서 그의 뒷모습을 찍고 있다. 정원 밖으로 사라지기 직전, 토시오는 고개를 뒤로 돌려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카즈히로와) 카메라를 바라본다. 그리고 프레임에서 사라진다. 카즈히로가 피사체들을 관찰하는 만큼, 그와 카메라 또한 관촬된다.


2.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라 카즈오의 <레이와 시대의 반란>을 보는 날이다... 얼른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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