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여러 편 보다 보면 내가 꼽는 최고의 영화가 뭔지 생각해보게 된다. 매 연말마다 ‘올해는 이런 영화가 좋았지’, ‘내년엔 어떤 영화가 있을까’, ‘지난번엔 이런 영화들이 좋았는데’라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올해도 연말을 맞아 올해의 베스트를 꼽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인생 최고의 영화들은 뭘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실 여러 차례 해왔던 질문이지만 매번 리스트가 조금씩 바뀌게 된다. 최근의 관심사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취향에 따라, 영화를 더 보면 볼수록 달라진다. 가령 몇 년 전에는 <킥 애스:영웅의 탄생>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의 영화도 별 다섯 개짜리 영화였지만, 다시 보고 여러 차례 생각이 바뀌면서 인생영화 리스트에서 제외하게 되었다. 처음 볼 때의 영화와 두 번째볼 때의 영화가 다르고, 무언가를 배운 뒤의 감상과 그 전의 감상 역시 확연히 다르다. 또한 학교 과제로 봤을 때의 영화와 나중에 다시 찾아봤을 때의 감상 또한 다르기도 하다.
왓챠 등의 서비스 덕분에 감상한 영화를 편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왓챠에 별점을 등록한 영화 중 별 다섯을 매긴 영화들을 인생영화라고 간단하게 생각해 보니, 총 26편의 영화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별 다섯을 매기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최고의 걸작이라도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영화.
아쉬운 부분이 있을지라도 개인적 취향에 완전히 부합하는 영화.
어떤 영화가 기술적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인생영화라고 불릴 영화의 기준은 개인의 취향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26편의 리스트가 좀 뻔해 보이긴 한다. 26편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가장 최근작인 <라라랜드>부터 가장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인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2부>(이하 <죽음의 성물>)와 <어벤저스>, 피터 잭슨의 끝내주는 코믹 호러 <데드 얼라이브>,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 두 편과 <에일리언>, <디스트릭트 9>, <토탈 리콜> 등의 SF, 영화 보는 즐거움을 알려준 봉준호의 <괴물>, 화면의 미학에 빠져든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고전 흑백 영화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 <메트로폴리스> 등 이내 인생영화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단 한 번만 본 영화도 있고, 수십 번 반복해서 관람한 영화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수십 번 관람했음에도 이 리스트에 들지 못한 영화도 있다.
유동적인 리스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로운 영화가 추가될 수도 있고, 있던 영화가 빠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항상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봉준호의 <괴물>,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 데이빗 예이츠의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불 2부>가 그렇다. 세편 모두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앞선 글에서도 썼듯이 <괴물>은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재관람한 영화이자 처음으로 혼자 관람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재미를 알려준 작품이랄까. 나이가 들면서 영화에 담긴 여러 메타포들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에 재차 감상할수록 좋아지는 영화다.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는 내 취향의 집합체 같은 영화다. 좀비, 고어, 아날로그 특수효과, 어이없는 유머까지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뜨거운 녀석들> 등의 영화들을 좋아하게 된 계기랄까. 항상 노트북에 소장 하고스 트레스 받을 때마다 감상하는 영화다. <죽음의 성물>는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극장에서 처음 만난 영화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기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죽음의 성물>이 개봉했을 때까지 ‘해리포터’라는 세계 속에 푹 빠져 살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성물>은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대로 표를 끊고 다시 극장으로 들어간 유일한 영화다. 처음 극장을 찾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는 영화 중 한편이다.
인생영화를 만나는 것은 어떤 영화적 체험을 동반한다. <괴물> 같은 경우엔 일상적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그에 대한 대응이 현실에서 영화와 동일하게 이어지는 것을 보며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데드 얼라이브>는취향의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경험시켜 주었고, B급 장르 영화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줬다. <죽음의 성물>은 정든 친구를 떠나보내는, 혹은 고향을 떠나는 느낌을 받았다. 각각의 영화가 준 경험은 다르지만, 모든 경험이 쌓여 지금의 취향이 만들어졌고, 지금처럼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그렇기에 ‘인생영화’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인생에 도움을 받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