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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1. 2020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 크리스 샤퍼

“새로운 기술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다만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방식을 바꾸어 공동체의 사회적 구조를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킨다”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를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야기다. 2016년 트럼프의 선거 이후 그의 승리가 SNS를 통해 벌어진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통한 것이었음이 밝혀졌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과 <소셜 딜레마>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나 수많은 기사, 책들이 이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10년째, 인스타그램 또한 그와 유사한 기간 동안 사용하고 있는 헤비 SNS 유저로써, 위의 이야기는 지난 10년 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체득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의 맥락에서 박근혜 정권의 ‘댓글 공작’과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검열을 봐왔고, 동시에 ‘#O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박근혜의 탄핵, 미투운동과 현재진행형인 낙태죄폐지 운동을 목격했다. 새로운 기술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이 명제는 SNS를 오랜 시간 사용한 유저라면, 그리고 SNS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약간이라도 고민을 가져본 이들이라면 얼추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 크리스 샤퍼가 이 명제를 처음부터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그는, 내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사례들을 언급하기 전 ‘주의력 경제’라 요악할 수 있는 SNS의 작동방식을 먼저 소개한다. 물론 우리는 알고리즘이 내가 인터넷에서 자주 들여다본 상품의 광고를 띄우고, 연관된 유튜브 영상을 소개하고, 영화, 책, 음악을 추천하고, 그러한 계정들을 알려준다는 것을 안다. 크리스 샤퍼가 책의 전반부에서 증명한 것은 이러한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음을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과 유사한 이야기를 하는 계정을 추천하여 내 SNS 피드를 그러한 계정들로만 채우도록 유도한다던가, 유사한 키워드 또는 해시태그를 지닌 콘텐츠만을 긁어모아 소개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인간의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주 노출되는 정보들을 우리가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설명이 붙는다. 물론 이는 책의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한 것인 것이다. SNS는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을 통해 입력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이름, 성별, 국적, 인종, 결혼/연애 여부, 가족관계, 학력 등 페이스북 정보란에 입력할 수 있는 정보들 외에도, 실시간 위치정보 등의 메타데이터, 내가 직접 정보를 게시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게시물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령 결혼/연애 유무나 반려동물의 유무, 정치성향, 출퇴근 경로 등), 온라인에서 내가 검색하고 보고 읽고 들은 모든 영상, 사진, 문서의 정보 등. 물론 이러한 정보만으로는 내 SNS 계정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때문에 SNS는 유사한 정보를 지닌 다른 계정들의 정보들을 수집하고 빅데이터화해, 계정들을 다시 특정 군으로 묶어내는 ‘협업 필터링’을 거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다시금 내 스마트폰 화면을 채우고, 이는 다시 ‘협업 필터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피드백 루프’는 왓챠나 넷플릭스 등의 콘텐츠 추천 방식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쉽게 말해, 왓챠는 내가 평점을 높게 준 영화에 평점을 높게 준 이들이 평점을 높게 준 다른 영화들을 추천해준다. 그것이 정보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수집되어 모든 방면에서의 광고와 콘텐츠 타겟팅으로 이어지는 것이 SNS다.


<거대한 해킹>은 이러한 타겟팅이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와 힐러리 어느 쪽에도 표를 주지 않았을 중도층의 사람들에게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2016년 선거 당시 ‘케임브릿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과 함께 특정 성향의 계정들을 분류해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에 동원되도록 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거대한 해킹>은 ‘케임브릿지 애널리티카’에 대한 내부고발과 폭로에 집중하며 유사한 사건들을 다루지 않았다. 반면 크리스 샤퍼는 1부의 3장에서 SNS를 프로파간다에 특화된 기술로 규정하며 그것이 다른 방식으로 활용된 사례를 보여준다. 여기엔 긍정적인 사례와 부정적인 사례 모두 포함된다. 전자의 경우 2014년 미국 퍼거슨시에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다. 이는 SNS가 차별에 대응하고 공권력의 탄압에 대응할 조직적인 운동을 가능케 할 창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2018년 시작된 미투운동 또한 긍정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크리스 샤퍼가 이것과 대비시키는 것은 역시 2014년에 벌어진 ‘게이머게이트’ 사건이다. 포챈이나 ‘더러운 서브레딧’ 등에서 활동하는 안티-페미니스트 게이머, 다양상을 포용하려는 게임업계의 방향성에 불만을 가진 백인남성 게이머들이 조이 퀸이라는 여성 게임 프로그래머를 공격한 사건이다. 조이 퀸의 게임에 대한 ‘가짜뉴스’에서 시작된 사건은 조이 퀸에 대한 물리적 협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게이머게이트’를 통해 모종의 가능성을 본 이들은 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혐오 등을 내세우며 ‘대안 우파’로 조직화, 세력화되었다. 이들의 활동이 새로이 선거가 치러진 2020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이라면 SNS를 통한 조직적인 움직임일 것이다. 두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책의 2부는 2016년 미국 대선은 물론 우크라이나 합병을 위해 러시아 정부에서 진행한 정보공작과 함께 필리핀, 브라질, 미얀마에서 벌어진 ‘민주주의의 해킹’을 다룬다. 각국의 SNS 사용 실태를 통해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이는 SNS 특유의 확증편향에 따라 퍼져 나가며, 이는 결국 선거의 결과로 이어진다. 이들은 언론탄압, 소수민족 탄압, 정권유지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운용하고 있다. <거대한 해킹>에서도 등장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위의 국가들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비교적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앞서 ‘Black Lives Matter’의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SNS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크리스 샤퍼는 2011년 ‘아랍의 봄’을 예시로 들어 그것의 한계를 설명한다. 2011년 이집트에서 독재정권을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SNS를 통해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행진을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의 시작은 어떤 의제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SNS는 혁명의 속도를 조절하진 못한다. 오히려 그것을 더 가속화한다.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된 혁명은 기존의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에 다가올 혼란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크리스 샤퍼는 그것이 군부 정권이 들어서고,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의 혼란이 이어졌던 이유라 설명한다. SNS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화하며 의제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그것의 속도는 혁명 이후에 요구되는 혼란을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공동체를 형성하진 못한다. 현재 홍콩과 태국 등지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시위, 혹은 한국에서 SNS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러 운동들의 한계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SNS는 하나의 견고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대신, 빠르게 모이고 빠르게 흩어지는 상황을 유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거대서사의 붕괴를 이야기하던 68이후의 담론은 SNS 등장과 발전을 통해 도래한 ‘탈진실’의 거대 서사를 구축했고,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해 하나의 국가나 기업, 조직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다. 물론 일상의 범위에서 우리는 SNS가 우리의 주의력을 충분히 앗아가지 못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양한 목적을 지닌 복수의 계정을 사용하며 자신에게 들어오는 정보량을 통제한다던가, 특정 알고리즘으로 치우친 듯한 SNS 피드를 마주한다면 새로 계정을 파거나 로그아웃을 하고, 기존 계정의 성향과 반대되는 계정을 팔로우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범주에서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SNS를 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자연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샤퍼는 “민주주의는 정보를 바탕으로 깊이 생각하고 서로 설득하는 시민들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이 중요하다. 우리가 소비하는 정보의 온전함을 신뢰할 수 없다면 민주적인 과정 역시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개인의 실천은 물론, 국회, 정부, 기업 경영진 등이 SNS의 허위조작정보 프로파간다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해결책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위터는 트럼프 진영의 허위조작정보 공세를 막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유포하는 듯한 트윗에는 경고문을 달고, 리트윗 버튼을 누르면 ‘리트윗하기/트윗 인용하기’라는 두 개의 선택지 대신 바로 인용 트윗 쓰기로 넘어가고, 링크가 포함된 트윗을 리트윗하기 전엔 링크를 클릭해 뉴스를 확인해보라는 경고문이 뜬다. 이러한 조치는 당연히 트위터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는 동시에 그만큼 트위터 내에서 빠르게 정보가 회전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대선 이후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것을 예정한 것과 다르게, 대선이 끝난 지금도 이 조치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우리는 일정 부분의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정보를 우리의 입에 떠먹여 주는 것을 거부하고 무엇이 독버섯인지 식용버섯인지 구분할 수 있는 감식안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고, 트위터의 조치는 그러한 감식안을 반강제로 갖추도록 유도하는 단발성 예방주사에 가깝다. 우리는 그 이후를 상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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