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8. 2020

<애비규환> 최하나 2020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가족’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가족은 무엇일까? 결혼, 출산, 입양 등으로 묶인 혈연 및 주민등록 상의 집단일까, 같은 집에 살아가는 동거인들을 통칭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특정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일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은 엄마, 아빠 자녀, 여기에 조부모 정도가 추가된 형태일 것이다. 혹은 막연하게 명절에 모이는 사람들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그것은 주로 혈연을 통해 엮인, 소위 ‘정상가족’이라는 틀에서 누군가가 추가된 형태의 가족일 뿐이다. 이러한 가족은 상당히 우연적으로 구성된다. 우연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을 통해 가족으로 결합한 두 사람일 뿐, 배우자의 가족이 내 가족이 된다던가 태어난 아이의 부모님이 자신들이라던가 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정상가족이라는 틀은 생각보다 많은 우연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한부모 가정일 수도, 자녀가 아주 많은 가정일 수도, 조부모와 부모의 형제자매까지 포괄하는 대가족일 수도, 혼자 혹은 결혼을 통해 결합한 것이 아닌 이들의 집합일 수도 있다. 

 <애비규환>은 토일(정수정)의 여정을 따라 가족이라는 단위가 굉장히 불균질 한 것임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대학생 토일은 자신이 과외를 하는 고등학생 호훈(신재휘)과 연애 중이다. 그러던 중 그는 임신하게 되고, 임신 5개월 차가 됐을 때 엄마 선명(장혜진)과 새아빠 태효(최덕문) 앞에서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호훈과 결혼하기 전 자신의 친아빠 환규(이해영)를 찾아 대구로 떠난다. 그러던 중 호훈이 잠적한다. 토일은 부모님과 친아빠, 그리고 호훈의 부모님(강말금, 남문철)과 함께 호훈을 찾아 나선다. 영화 초반의 토일은 자신이 자신의 결혼과 출산을 계획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토일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이다. 선명이 어린 토일의 동의 없이 환규와 이혼하고 태효와 재혼한 것이, 토일에게는 마치 갑자기 아빠가 사라지고 아저씨가 나타난 것으로 느껴졌던 것처럼 말이다. 가족(토일의 경우엔 예비 가족과 전(前) 가족을 포함하는)은 어쨌든 타인이고, 각자의 관계성도 다르다. <애비규환>은 이들을 한 곳에 의도적으로 모아 두고 그 난장판을 스케치하는 작품에 가깝다.

 인물이 4명 이상 모이는 장면들은 그 난장판을 구현한다. 토일과 호훈이 선명과 태효에게 임신 사실을 밝히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토일의 집에 찾아온 환규가 선명과 태효와 대면하는 장면, 토일과 그의 세 부모님, 호훈과 그의 부모님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까지, 모든 것은 난장판이다. 이 난장판에서 관습적인 대화 장면을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화의 대상은 산발적이고, 카메라는 인물들 곳곳으로 향하는 대화의 방향을 쫓을 뿐이다. 때문에 종종 대화 장면이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자신의 계획이 흔들리는 토일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기에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토일과 세 부모님이 호훈의 배드민턴 클럽 사람들과 대면하는 장면이다. 꽤 긴 트래킹 롱테이크 숏으로 이 장면이 촬영되었는데, 네 캐릭터의 성격은 물론 그들 사이의 관계성이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 드러나는 깔끔한 장면이었다. 

 어쨌든 토일의 여정은 결국 가족을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향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가족은 계획할 수 없는 것이고, 우연적인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토일의 엄마 선명이 그랬고, 두 아빠가 그랬고, 토일과 호훈도 그렇게 될 것이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불확실한 관계 속으로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다. 결혼에 필요한 확신은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느냐에 대한 것이지, 그 상대와의 백년해로에 대한 확신이 아님을 이 영화는 주장한다. 대신 준비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상황에서 나의 선택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며, <애비규환>은 토일이 그것을 선택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죽던 날> 박지완 20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