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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4. 2020

<프리키 데스데이> 크리스토퍼 랭던 2020

 존재감 없는 왕따 고등학생 밀리(캐서린 뉴튼)의 동네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 오던 연쇄살인마 블리스필드 도살자(빈스 본)가 나타난다. 동네에 하나뿐인 고등학교의 홈커밍 파티가 예정된 13일의 금요일, 도살자가 몇몇 고등학생을 살해하며 동네엔 위기감이 맴돈다. 그러던 중 도살자가 집으로 돌아가던 밀리를 공격하고, 도살자가 들고 있던 고대의 단검의 힘으로 둘의 몸이 바뀐다. 도살자의 몸을 한 밀리는 자신의 유일한 두 친구 조슈아(미샤 오쉐로비치), 나일라(셀레스트 오코너)를 설득해 자신의 몸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도살자를 찾아 몸을 되찾고자 한다.

 <해피 데스데이> 연작으로 나름의 상업적 성공을 거뒀던 크리스토퍼 랭던이 블룸하우스와 함께 내놓은 신작 <프리키 데스데이>는 그의 전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재기 발랄함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도살자의 가면을 포함해 도살자와 밀리가 처음 대면하던 장면은 존 카펜터의 <할로윈>을, 13일의 금요일을 향하 카운트되는 자막은 대놓고 <13일의 금요일>의 제목 폰트를 차용한다. 더 나아가 <스크림>, <죽여줘! 제니퍼>, 2018년 버전의 <할로윈> 등의 영향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다시 말해 <프리키 데스데이>는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하스를 적당히 뒤섞어 놓은 살인마와 몸이 뒤바뀌는, 그러면서 여러 슬래셔 장르의 대표적인 장면들을 차용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주인공의 두 친구를 백인 게이 남성과 흑인 여성으로 설정해, 기존 슬레셔 영화에서 초반에 사망할 법한 인물들로 설정하고 그것을 대사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슬래셔 장르의 패러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쉽게도 영화의 미덕은 이 정도에서 그친다. 블룸하우스의 2018년 <할로윈>이 슬래셔 장르의 고전을 지금에 걸맞게 여성중심적 이야기로 리부트 하려다 결국 장르의 관습 안에서 죽어가는 인물들을 착취하는 영화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프리키 데스데이> 또한 표면적으로는 슬래셔라는 오래된 하위장르의 성격을 패러디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할로윈>이 시도했던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팝콘무비로서의 매력은 있지만, <할로윈>과 마찬가지로 현재에 걸맞은 방식의 슬래셔를 선보이려다 결국 장르의 전통으로 회귀하거나 새롭게 주인공으로 내세운 캐릭터(성소수자, 여성, 유색인종)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것들 대부분은 각 캐릭터가 대표하는 것들의 긍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할 뿐이며,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되기만 한다. 물론 일탈하며 가족을 등한시하던 여성 주인공을 징벌하듯 살해당함을 반복하게 한 <해피 데스데이>나 이도 저도 되지 못한 <해피 데스데이 2>보다는 한발 나아간다. 육체적 강함이 아닌 다른 방식의 강함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장르적 쾌감으로 발현되는 엔딩은 크리스토퍼 랭던의 두 전작이나 <할로윈>보다는 조금이라도 괜찮은 지점이다. 다만 그곳까지 나아감에 있어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많고, 결국 백인 중산층 여성이 아닌 다른 정체성의 소수자들은 주변적 존재로서 기능할 뿐이라는 점에서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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