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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8. 2020

2020-11-27

1. 서울독립영화제가 시작됐다. 거리두기 2단계 때문에 압구정 CGV 건물에 있는 투썸이 운영을 하지 않고, 아트관 입장로 쪽 로비의 의자들이 있던 장소는 방역부스가 되어 앉을 곳이 사라졌다. 오늘 단편경쟁1과 <셀프-포트레이트 2020>을 봤는데 그 사이에 붕 뜬 2시간 반을 어디선가 보내느라 고생했다... 다행히 내일은 영화 사이 빈 시간이 많지 않고, 다른 날들은 한편만 관람하는 일정이다. 일요일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조정을 결정할 것이라던데, 영화제 자체가 취소되지 않기만 바란다. 여튼 아래는 오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후기.


<그림자 두번째 소개> 이지선 2020

사실 보다가 잠시 딴 생각을 했는데, 러닝타임이 4분 밖에 되지 않아 어느새 끝나버렸다. 잘 기억이 안 난다...

<서정시작법> 윤혜인 2020

건국대학교 영화과 졸업영화로, 홍상수가 지도교수로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영화. 반장이자 국문화 진행을 꿈꾸고 있는 다정(정지현)이 전학생 서정(김혜윤)의 백일장 시 부분 입상 사실을 알고 시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서정은 시 쓰는 법을 알려주는 대신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이 드는 시집을 빌려준다. 다정이 야자시간에 시집을 읽는 장면에서, 영화의 화면비가 넓어지며 마치 판타지 동화와 같은 톤으로 화면이 뽀샤시해지거나,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특정한 색채가 강렬하게 강조된 화면이 등장한다. 시를 읽는 목소리는 다정이 아닌 서정의 목소리다. 여기서 영화는 다정이 있는 학교의 세계를 벗어나 글의 세계(이는 시와 함께 서정이 쓰는 일기를 포함한다)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물론 '글의 세계'라 지칭되는 것은 다정이 생각한 서정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지만, 서정의 일기가 그곳에 속한다는 점에서 모호해진다. 게다가 서정이 다정에게 주는 선물은 다정이 떠올린 '글의 세계', 서정의 세계가 상상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서정이 전학오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가 전학가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전학 오는/가는 서정의 모습과 자리에 앉아 있는 다정의 모습을 촬영한 별개의 두 장면은 완전히 같은 숏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방학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기말고사를 연거푸 언급하는 담임의 말은 영화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아버린다. 그렇다면 <서정시작법>은 다정이 시를 통해 자신만의 서정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파괴되길 반복하는 폐곡선의 구조인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앞서 그러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과감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정시작법>은 꽤나 인상적이다.

<희지의 세계> 이효정 2020

건축학과를 다니는 희지는 자취중이다. 그 집에 거의 눌러 앉은 친구 은서는 희지가 설계한 집에 같이 살자고 말한다. 희지는 은서를 마음에 품고 있다. 그는 은서도 같은 마음인지 확인하려 한다. <희지의 세계>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또 나만 진심이었지?"라는 트위터 밈과도 같다. 영화가 시작하면 화면엔 희지의 집 식탁에 앉아 있는 은서가 보이고, 은서의 시점으로 빨래를 널고 있는 희지가 보인다. 여기서 영화의 중심이 희지인지 은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영화가 처음 보여주는 인물이 은서였기에 관객은 은서를 중심으로 희지를 바라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고, 은서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영화의 오프닝 숏이 침대에 앉은 희지의 시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서로 다른 둘의 풍경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다만 29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서 희지의 이야기는 펼쳐지지만 은서가 본 풍경은 빨래 너는 희지를 보는 시점숏 이외엔 쉽사리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희지의 세계>는 봐야할 것의 반쪽만 본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외숙모> 김현정 2020

<은하비디오>, <나만 없는 집> 등을 연출했던 김현정 감독의 신작. 임신 5개월차인 민경이 엄마와 함께 외삼촌의 첫 제사를 지내러 가서, 외숙모에 대한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내내 외삼촌이 언급되고 민경의 큰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면 등장인물은 전부 여성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들의 유토피아 따위를 그려내려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역에 가깝다. 어른들은 외숙모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거기에 반박하는 것은 민경의 엄마뿐이다. 영화가 담아내는 갈등 상황은 수많은 유사품을 갖고 있지만, <외숙모>는 그것을 극적으로 터트리기보단 이따금씩 돌출되는 높은 언성이나 표정, 짧은 눈물로 드러낸다. 김현정 감독의 전작들처럼 <외숙모>에서도 클라이맥스가 등장한다. 민경과 그의 엄마가 뒤늦게 제삿집에 찾아온 외숙모를 대면하는 장면이다. <나만 없는 집>의 클라이맥스가 사사건건 언니와 자신을 비교하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와 설움을 터트리는, 영화가 쌓아온 감정선을 터트리는 것이었다면, <외숙모>의 클라이맥스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감정을 터트린다기 보단 가족의 모호한 역학관계 속에서 감정이 터지는 방향이 무엇으로 결정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흥미로운 지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기시감으로 인해 영화가 다소 평이해보여 아쉽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 이동우 2020

<노후대책없다>의 유쾌함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꽤나 고생할 것이다. 영화는 20년 전 연출한 단편영화 <자화상 2000>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까지 초청되었던 노숙인 이성열 감독을 우연히 만난 이동우 감독이, 그의 모습을 자신의 미래라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동우는 카메라를 들고 이성열을 찍는다. 영화는 2017년 말 둘의 첫만남부터 2020년 4월까지의 시간을 담아내고, 그 중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의 촬영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사이사이 이성열의 영화 <자화상 2000>과 그가 해외 영화제에 가서 촬영한 영화제 현장 영상이 등장한다. 다만 영화는 이성열과 다른 노숙인들을 카메라에 담아낸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엔 몇몇 순간의 날짜를 명시하는 자막이 등장하지만, 대화의 주제와 내용, 혹은 상황에 따라 자막이 명시한 시간대는 무시된다. 이성열은 이동우의 응원에 힘입어 새로운 '자화상' 시리즈를 계획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무엇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가 날짜를 명시함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시간대를 뒤섞어 버리는 것은 무엇도 진행되지 않는/못한 상황 자체와 공명한다. 영화는 대낮부터 술에 취한 이성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성열은 대부분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기도 하고, 새 영화를 찍을 생각에 들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으로 인해 노숙인 커뮤니티 속에서도 점차 멀어지는 모습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의 원인임과 동시에 결과다. 자활을 목적으로 기초수급자에게 현금을 제공하지만 막상 일을 구하면 수급이 끊기는 상황과, 새 영화를 찍고 싶은 이성열의 마음은 모순 속으로 블랙홀처럼 사람을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공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 조각나 담긴 이성열의 <자화상 2000>과 중첩된다. 이동우가 이성열의 모습을 자화상처럼 느낀 것처럼,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자화상 2000>의 다시 그린 자화상과도 같다. 영화의 엔딩크레딧 이후엔 <자화상 2000>의 엔딩크레딧이 등장하고, 영화제 상영 이후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15분 짜리 자화상에 대한 168분의 응답. 이성열이 다른 노숙인이 손거울을 들이대자 "반사"라며 자신도 손거울을 꺼내 든 것처럼, 두 영화는 서로의 상을 그 속에서 무한히 복제하며 내파하는 이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2. 수요일엔 인디포럼 월례비행 [엄지혜 작가전: 꿈 속의 꿈에서 깼을 때]를 관람했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고, 곽영빈 평론가가 비평글을 썼다는 것이 궁금해서 찾아간 것도 있다. 7편의 단편이 상영되었는데, 사실 극장 스크린을 위해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보니 피로감에 조금 졸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무래도 <커런트 레이어즈: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다. 매킨토시를 켜 포토샵의 초기 버전으로 무언갈 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곧이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비롯해 수많은 이미지들이 뒤섞여 곤죽이 된다. 엔드크레딧에서 염지혜 작가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는 어도비, 유튜브, 셔터스톡, 그리고 수많은 온라인 사이트에 감사를 표한다. 곽영빈 평론가는 염지혜 작가의 작업들에 대해 '가소성(plasticity) 시대의 예술작품'이라 칭하는데, <커런트 레이어즈: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를 비롯한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 <우리가 게니우스를 만난 곳>,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 등의 작품 속 형상들은 분홍돌고래, 시지프스, 메르스 바이러스 등으로 다양하지만 3D 모델링으로 구현된 그것들은 <커런트 레이어즈> 연작 속 사람, PC, 수많은 스톡 이미지처럼 변형되고 뒤섞인다. 이 작품들은 각 형상이 존재했던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맥락 위에 그 이미지들이 기입되는 것이 아니라, 맥락 밖으로 버려진다. 이러한 작업들은 <우리가 게니우스를 만난 곳>에서 히말라야가 히말라야로 지칭되기 이전에 히말라야는 히말라야가 아니었음을, 마크 오제의 '무장소' 개념을 경유해 설명하는 과정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3D 모델링, 딥페이크, 점점 간편하고 정교해지는 포토샵, 틱톡을 위시한 SNS와 사진어플들의 필터 등은 디지털 변형 과정을 거치기 이전의 이미지, 다시 말해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대상의 실제(에 가까운 복제된) 이미지와 변형된 이미지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낸다. 이 간극은 카메라에 포착된 실제 이미지를 '무장소' 개념과 유사한 영역으로 보내버린다. 때문에 지금의 이미지는 변형과정을 통해 일종의 명명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이나 <내언니전지현과 나> 등의 영화가 [포켓몬 고]와 [일랜시아]를 게임이 구성하는 본래의 이미지와 다른 것(미군기지로의 통로, 아나키적인 헤테로토피아)으로 명명하며 작품을 전개하는 것과 닮아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염지혜의 작업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과 배경, 이미지의 변형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곽영빈 평론가가 글에서 언급한 벤야민의 "영화의 개선 가능성/수정능력"은 지금에 와서 이미지의 형상 자체의 변형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당장 유튜브에도 딥페이크를 통해 영화 속 배우들의 얼굴을 바꾼 영상들을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이는 벤야민이 채플린의 영화를 예시로 들며 언급한 '개선 가능성/수정능력'과는 다른, 촬영된 형상과 화면에 나타난 형상 사이에 간극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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