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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5. 2020

2020-12-15

1. 영화관에 가지 못한 지 꽤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극장을 찾은 게 12월 3일 <내언니전지현과 나>와 <더 프롬>을 본 것이었으니, 벌써 2주 가량 시간이 지났다. 영자원도 다시 문을 닫았고, 아직 못 본 <에듀케이션>은 우물쭈물 하는 사이 상영관이 줄어 시간이 맞질 않는다. 물론 <에듀케이션>을 제외하면 딱히 보고 싶은 개봉작이 없어 극장에 안 가고 있기도 하다.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와중에 굳이 김종관의 영화 같은걸 보러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다. 개봉이 연기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원더우먼 1984>나 <나이팅게일> 등이 개봉하기 전까진 극장에 안 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된다면 훈련소에 다녀온 4주 이후 가장 장기간 극장에 가지 않는 것이 되는데, 괜히 울적해진다...


2. 극장에 가지 못하는 동안 OTT들로 미뤄뒀던 드라마들을 보는 중이다. <퀸스 갬빗>은 딱 기대한만큼 괜찮았고, 한국에 안야 테일러 조이의 팬이 많아진 것 같아 새삼 기쁘다. 웨이브에 올라온 조던 필의 <환상특급>은 별로 재미 없었다. 오리지널 드라마는 못 봤고, 스필버그, 조 단테, 존 랜디스, 조지 밀러가 참여한 극장판만 봤었는데, 당시의 오프닝을 리메이크한 오프닝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존 조, 스티븐 연, 세스 로건, 재지 비츠, 쿠마닐 난지아니, 애덤 스콧 등 눈에 익은 배우들이 에피소드마다 포진해 있지만, 크게 기억나는 배역도, 이야기도 없다. 볼 때는 그럭저럭 시간이 잘 흘러거지만, 막상 다 보고 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달까? 역시 웨이브를 통해서 본 <시녀이야기>도 기대만큼 재밌진 않았다. 물론 폴커 슐렌도르프의 1990년 영화화보단 매끄럽고 잘 만들었지만, 시즌이 이어질수록 소설이 다룬 범위를 초과하는 이야기들에 별 다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모스가 연기한 준이 겪는 고행의 종류과 크기만 점점 늘어난달까? 물론 원작 소설을 딱히 재밌게 읽지 않았기에, 드라마도 큰 감흥이 없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푸세'로 등장했던 사미라 와일리가 큰 배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반가웠다. 아직 보고 있는 시리즈는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공개된 루카 구아다니노의 <위 아 후 위 아>와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 <아리스 인 보더랜드>다. 전자는 역시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 답게 한 여름의 청춘들을 예쁘게 잘 찍었고, 음악도 적잘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역시나 지루하다. 생각해보니 그의 작품 중 지루하지 않았던 것이 없는 것 같다. 대표작 중 <아이 엠 러브>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후자의 경우 <배틀로얄> 이후 수없이 제작되어 온 서바이벌 장르의 드라마인데, 아소 하로의 만화 [임종의 나라 앨리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우연히 도쿄와 꼭 닮은 세계인 '보더랜드'에 입장한 주인공 아리스와 친구들이 생존을 위해 게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그널 100>처럼 최근에도 일본 특유의 배틀로얄/서바이벌 장르의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 계보 안에서 충분한 재미를 주긴 한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다. 게임을 해쳐 나가는 이들의 활약도, 약속과 배신을 반복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차라리 <신이 말하는 대로>를 만화책으로 다시 보던가, 올해 부천에서 공개된 <시그널 100>을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집에서 이런저런 영화들도 봤다. 아세안 영화제나 JFF 등의 온라인 영화제도 있었지만, 각 영화제에선 겨우 한 편씩 밖에 관람하지 못했고... 유아사 마아사키의 <킥-하트>를 놓치지 않고 관람한 게 다행이었다. 영자원에서 진행중인 단편영화 기획전에 있는 작품들을 즐겁게 관람했다. 상영회까지 열었던 <그녀를 지우는 시간>이야 올해 가장 즐거운 영화 중 하나였고, <안느 체크소위코프와 일곱 편의 영화들>은 재밌는 아이디어를 재밌는 방식으로 구현한 나름의 대체역사물이었다. <어둠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소리>와 <픽션들>은 컨셉이 주는 재미가 있을 뻔했으나, 전자는 다소 익숙한 마무리로 매듭지어지고, 후자는 특유의 '영화하는 찌질하고 폭력적인 남성'의 감성이 너무 짙어 거부반응이 일었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과 함께 종종 언급되던 <종말의 주행자>는 대체 로케이션이 어디일까 하는 마음으로 봤다. 


4. 얼마 전에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이해 주문한 <플라이> 콜렉션 박스셋을 받자마자 1958년작 오리지널 <플라이>를 봤다. 크로넨버그의 리메이크작과는 달리 이미 사건이 벌어진 뒤, 경찰의 수사를 통해 사건을 향한 플래시백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어떤 과학자가 물질전송기를 만들고 자신을 실험하다 우연히 파리와 결합된다는 이야기의 골자는 유사하지만, 크로넨버그처럼 과학을 경유한 인간-비인간의 결합에 집중하기 보단 50년대에 쏟아져 나오던 괴기영화의 결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 단테의 <마티니>에 등장하는 싸구려 괴수물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거나, <뎀!>과 같은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플라이>와 함께 스필버그 콜렉션 블루레이도 도착했다. <듀얼>, <쥬라기 공원> 1, 2편, <E.T.>, <죠스> 등이 담겨 있고, <올웨이즈>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있다. 그 중 <슈가랜드 특급>과 <1941> 확장판을 봤는데, 전자는 <듀얼>에 조금 더 이야기를 부여한 영화로 느껴졌고 후자는 그냥 재미없었다. 스필버그 최악의 영화를 꼽으라면 우선 <1941>부터 말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5. 집에만 있다보니 게임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사이버펑크 2077]을 온갖 버그와 튕김을 뚫고 플레이하는 중. 다만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관이라던가 이야기가 썩 재밌지도 않고, 오픈월드 치고는 상호작용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앞으로 패치가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에 새로운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GTA] 시리즈에 사이버펑크 스킨을 씌우는 게 더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까지 플레이했던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오픈월드가 워낙 완벽에 가까웠어서 그런지 더욱 비교된다. 어쨌든 엔딩 볼 때까지는 해볼 생각이다. 


6. 이번 주는 놓친 영화들을 볼아 볼 생각이다. 우선 엘리자 하트만의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항상 그렇다>부터 시작해서, 돈 헤르츠펠트의 <월드 오브 투모로우 3>(이건 1, 2편도 봐야된다), <사운드 오브 메탈>, <69세>, <리벤지>, 시간이 된다면 마크 커즌스의 <우먼 메이크 필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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