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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01. 2021

2021-02-01

1. Rest in Peace and Power SOPHIE


2. 오랜만에 영상자료원에서 다나카 기누요의 영화 두 편을 봤다. 오랜만에 필름상영 관람이기도. 그의 데뷔작 <연애편지>는 어쩐지 나루세 미키오와 오즈 야스지로를 모두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게 다나카 기누요는 두 감독의 여러 영화에 출연해왔으니... 참고로 류 치슈가 카메오처럼 잠깐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영화는 전후 일본의 한심한 남성이 자신의 한심함을 타인(주로 첫사랑인 여성)에게 돌리다 결국 참회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참전군인 마유미는 동거하던 미군이 보내주는 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과 미치코, 중고 미국잡지를 되팔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동생을 달갑지 않아 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마유미에게 영어 연애편지 대필 일을 시켜준 그의 사관학교 동기는 “일본인 모두 전쟁에 책임이 있어. 전쟁이 끝난 후 우리 모두 힘겹게 살고 있고,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진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다나카 기누요 영화들의 (나루세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얼굴 클로즈업 숏들은 누군가의 삶에 돌을 던지는 게 결국 제 얼굴의 침 뱉기임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가슴이여 영원히>는 정말 걸작이었다. 다나카 기누요가 배우로 협업한 감독들의 영화를 연상시키면서도, 영안실 장면이나 수술 장면처럼 장르영화 스타일의 장면들이 갑작스레 등장할 때는 영화가 지닌 괴력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욕망으로 삶을 추동하고자 하는 후미코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히 채울 때, 관객은 그저 그의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에 긍정이나 부정을 표하는 것 자체를 영화는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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