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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2. 2017

린치의 성장영화, 해피엔딩

개봉 30주년 맞아 재개봉한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벨벳>

*스포일러 주의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벨벳>이 개봉 30주년을맞아 국내에서 재개봉했다. 아버지가 사고로 입원해 룸버튼으로 돌아온 제프리(카일 맥라클란)는 집 근처에서 우연히 잘린 귀를 발견한다. 귀를 윌리엄 형사(조지 디커슨)에게전달하고 잊어버리려 하지만, 형사의 딸 샌디(로라 던)이 펍에서 노래하는 가수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샌디의 도움으로 도로시의 집에몰래 숨어든 제프리는 도로시와 마약 밀매범 프랭크(데니스 호퍼)의충격적인 관계를 목격한다.

 <블루벨벳>은 린치가 만든 성장영화랄까. 제프리는 잘린 귀의이미지를 통해 이상한 섹슈얼리티의 나라로 들어간다. 귀를 뒤덮고 있는 개미 같은 인간들이 도로시의 주변에가득하다. 관객들은 제프리와 함께 옷장에 숨어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프랭크의 성적인 역할극을 바라보게된다. 프랭크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도록 도로시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관계를 뒤집어 아기를 연기한다. 마스크를 이용해 숨을 참아가며 행위를이어가는 프랭크는 도로시에게 “빌어먹을, 날 쳐다보지 마.”라고 말하며 폭행을 가한다. 변태적이고 가학적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욕망으로 가득한 역할극이 끝나고, 제프리는 옷장에서 나온다. 도로시를위로하기 위해 다가갔던 제프리는 어느새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제프리와도로시의 관계는 프랭크가 가진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모방 혹은 변형으로 보인다. 위로를 목적으로 접근한제프리는 도로시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게 되고, 가학적인 성행위를 거부하지만 끝내 도로시를 치게 된다. 결국 제프리는 프랭크의 덜 가학적인 버전이 된다. 이런 제프리의모습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성관계 장면을 목격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생기는 전형을 떠올리게 만든다. 제프리는영화 후반부 프랭크를 총으로 쏴 죽인다. 프로이트가 말하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근원인 거세공포를 남근적상징으로 제거한다. 샌디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낸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비정상적 색슈얼리티와 범죄가 뒤섞인 세계에서 탈출한 영화는 유독 평화롭고 밝은 톤으로 마무리된다. 멀쩡한 제프리의 귀에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에필로그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해피엔딩으로마무리된다.

 청춘영화에가까운 스타일로 그려지는 제프리와 샌디의 장면들과, 뜬금없는 편집과 기괴한 상황들이 이어지는 프랭크와그의 일당이 등장하는 장면은 통상적으로 말하는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된다. 폭력과 폭언이 이어지는 프랭크일당의 행동과 마약을 한 상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몇몇 편집은 프랭크의 세계를 확실한 악, 가까이하지말아야 할 것으로 규정짓는다. 그리고 마침내 가까스로 균형을 맞추며 이중생활을 하던 제프리의 세계에프랭크의 세계가 침범한다. 그 순간이 되어서야 각성을 결심한다. 동시에도로시의 관점에서 제프리는 자신의 세계에 침범한 사람이다. 집과 펍을 오가며 프랭크 일당의 폭력과 무대위에서의 노래뿐이 없던 도로시의 상황 속에 나타난 환영과도 같다. 오직 제프리만이 비정상과 정상 두세계 모두에 속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와중에, 도로시가 샌디의 집 앞에 등장한 것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

 바비빈튼의 올드팝 ‘블루벨벳’과 잘린 귀의 이미지에서 영감을받아 만들어졌다는 <블루벨벳>은 관객에게 무얼남길까. 비정상에서 탈주해야 한다? 사랑이 모든 해법이 된다? 영화 속 사건이 미국 정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링컨의 이름을 딴 거리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룸버튼은 린치가 보는 미국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그 속에서의 일들을, 추악한 욕망과 범죄, 정의와 순수를 믿는 사람들의 존재, 샌디가 꿈에서 봤고 엔딩에 이르러 등장한 개똥지빠귀의 과장된 평화가 린치가 바라본 미국이 아닐까. 잘린 귀와 ‘블루벨벳’이라는심상으로 그려낸 120분짜리 린치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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