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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06. 2021

<승리호> 조성희 2020

 2092년의 지구, 행성이 황폐해지자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이 이끄는 거대기업이 지구 주변 궤도에 인류를 위한 보금자리 UTS가 만들어진다. 그간 지구에서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의 잔해가 UTS를 위협하자, 몇몇 이들은 지구 궤도를 떠도는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우주 청소부를 자처한다. 조종사 태호(송중기),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장 선장(김태리), 마약상 두목이었던 타이거 박(진선규), 피부이식 수술을 받길 원하는 로봇 업둥이(유해진)는 ‘승리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의 쓰레기들을 처리한다. 그러던 중, 사고로 파괴된 UTS의 우주선에서 실종된 인간형 폭탄 로봇 도로시(박예린)를 발견한다. 이들은 도로시를 노리는 세력 ‘검은여우’가 있음을 알게 되고, 도로시를 거액에 거래하려 한다. 하지만 도로시를 노리는 다른 세력이 존재하고, 이들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등의 조성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의 전체적인 방향성은 조성희 감독들의 전작과 유사하다.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녀 두 사람이 전체 서사의 주축이 되고, 주변 인물들과의 앙상블 속에서 두 사람이 휘말린 어떤 사건이 전개된다. 두 주인공의 나이가 유사했던 <늑대소년> 정도를 제외하면 단편 <남매의 집>부터 <승리호>까지 조성희의 영화는 대체로 이런 설정에서 출발한다. 단지 영화가 택하는 장르만이 다를 뿐이다. 그간 조성희는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재난물(<남매의 집>, <짐승의 끝>), 늑대인간 로맨스(<늑대소년>), 탐정물(<탐정 홍길동>) 등을 만들어왔다. <승리호>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승리호>는 조성희의 앞선 영화들보다 더욱 착실하게 장르 클리셰를 쫓아간다. UTS와 같은 우주 거주지가 등장하는 <엘리시움> 등의 작품, ‘우주 해적’이 등장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모든 언어를 통역하는 통역기, 인간과 유사한 행동과 감정을 지닌 안드로이드 등등. 이 영화는 그러한 클리셰를 이리저리 짜 맞추고, 다소 부실한 캐릭터를 배우의 퍼포먼스로 때운다(특히 장 선장과 설리반). 신파로 비판받는 다른 한국의 텐트폴 영화들에 비해 신파 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부산행>의 그 장면처럼 배경을 모두 새하얗게 날려 버린 장면에선 어쩔 수 없이 기시감과 거부감이 든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나름 재밌게 보았는데, <승리호>라는 영화의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했던 부분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김태리 배우의 팬이고, 적당히 괜찮은 비주얼을 선사하는 킬링타임용 SF 영화에 관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 때문이겠지만. 어떤 지점에서 <승리호>를 보는 경험은 <반도>를 관람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데, 두 영화 모두 ‘한국영화 최초’의 어떤 장르를 표방하며 그에 걸맞은 비주얼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승리호>가 한국영화 최초의 블록버스터 우주 영화라면, <반도>는 블록버스터 포스트-아포칼립스일 것이다. <승리호>의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반도>의 오목교나 홈플러스 건물과 같다. 단순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 폐허 혹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에서 오는 반가움은 아니다. 도리어 두 영화가 영화의 국적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디테일들에서 오는 길티 플레저가 있다. 그러니까 좀비들을 가득 풀어놓은 투기장에서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흘러나온다든가, 2092년의 우주에서 우주 해적들이 섰다를 치는 그런 순간들의 어처구니없음이 도리어 즐거움으로 다가온달까? 이 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는 아무래도 <기묘한 가족>이라 생각하지만, <승리호> 또한 그 대열에 집어넣어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자. 모든 언어를 통역 가능한 통역기가 있는 세계에서 굳이 자신을 숨긴다고 음성변조를 거친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태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재밌다. 아, 물론 <승리호>의 만듦새는 <반도>보다 낫다.     

 결국 <승리호>는 그간 한국의 텐트폴 영화들이 해온 것을 우주를 배경으로 호들갑스럽게 답습하는 영화다. 다만 쓸데없는 로맨스를 제거하고, 인종을 비롯한 다양성을 추가하고, 배경을 우주로 옮겼을 뿐이다. <승리호>는 코로나 19 이전에 쏟아져 나온 온갖 상황 속에서 신파를 위한 플래시백과 슬로모션을 남발해대는 그런 유의 영화는 아닐지라도, 조성희 감독의 전작들과 궤를 함께한다기엔 너무나도 평범하다. <탐정 홍길동>의 시대 배경을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마을의 모습이나, 늑대인간으로 시작하여 팀 버튼의 <가위손>처럼 마무리되는 <늑대소년>, 폭력적인 상황이 제공하는 불쾌감 속에서 피어나는 기묘한 몰입감이 <승리호>엔 없다. 대신 기술력과 스타 배우를 등에 업고 매끄럽게 만들어진 영화들이 주는, 맥주 한 캔을 비우며 보기 좋은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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